뱅크런에 증시 급락?…SVB발 '블랙먼데이' 오나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3-03-12 10:06
수정 2023-04-11 00:01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결국 금리 급등 리스크를 이기지 못하고 파산했습니다. 한 때 “너도 나도 따라하겠다”며 벤처특화은행의 벤치마킹 모델로 통했습니다. 국내 은행장들도 성지순례하듯 방문하던 곳입니다. 5000개가 넘는 미국 은행 중 16번째로 큰 은행이지만 위험신호가 나온지 정확히 44시간 만에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고속 긴축에 따른 광속 파산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거품이 낀 빅테크와 금융의 결정체인 실리콘밸리형 금융이 파월형 고강도 긴축의 희생양이 된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요. 시장에선 SVB에 돈이 묶인 스타트업의 도미노 파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SVB의 유럽과 중국 영업망도 흔들리면 글로벌 위기급으로도 커질 수 있습니다.

부동산 대출 비율이 높은 은행이나 유럽 대형 은행의 위기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그래도 미국 정부가 빠르게 개입해 사태를 진화하려 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시스템적 금융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불안감이 확산하자 Fed발 고강도 긴축 가능성은 낮아졌습니다.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50bp(1bp=0.01%포인트)를 올리는 게 기정사실처럼 인식되다가 이제는 ‘아무도 모른다’로 바뀌었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 기준금리를 사실상 결정해온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SVB 사태 때문에 2차 방정식이 된 Fed의 금리 결정을 중심으로 이번 주 주요 일정과 이슈를 정리하겠습니다. SVB 파산으로 제2의 리먼사태 오나 약세장엔 장사 없듯 고금리를 끝까지 버틸 장수도 없습니다.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친 미국 중앙은행(Fed)이 뒤늦게 기준금리를 초고속으로 올린 후폭풍이 없을 리 만무합니다. 금리 급등의 재앙은 누군가에게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그동안 Fed 주변에선 “철저한 리스크 헤지로 금리 인상 위험성을 낮추고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렇게 변신했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대출을 고정금리로 전환해 대출자들의 부담을 없애고 그 리스크를 떠안은 금융회사들은 파생금융 상품 등으로 금리 급등 리스크를 줄였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SVB 파산으로 허언임이 입증됐습니다. Fed의 초고속 금리 인상으로 미 국채를 비롯한 채권 금리가 급등해 채권 가격이 급락했습니다. 고객들의 무더기 예금 인출로 유동성이 부족해진 SVB가 보유한 자산 중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미 국채를 내던졌는데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이번 주엔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조치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법적으로 보호받는 25만달러 예금한도를 벗어난 예금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릴 것인가와 SVB에 돈이 묶인 스타트업 고객들에게 유동성을 바로 공급할 것인가 등이 관건입니다. 예금자 보호한도 이상의 예금도 보장하겠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전액은 아닙니다.

지난해말 FDIC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이 전체 예금의 95%입니다. 미국 IT와 헬스케어 분야 벤처기업의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습니다. 영업망도 미국 뿐 아니라 영국, 독일 등 유럽과 중국, 인도에도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SVB의 총자산(2090억달러)이 총예금(1754억달러)을 넘습니다. 하지만 자산은 장부상 가치일 뿐 실제 시장에서 얼마나 회수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법적 보호 상품이 아닌 펀드 같은 금융투자 상품은 어떡할 것이며 대출과 지분투자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도 골칫거리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시한폭탄되나
금리 급등 폭탄은 어디선가에서 또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SVB와 엮인 벤처와 스타트업이 1차 위험 대상입니다. SVB로부터 대출을 받고 지분도 내줬습니다. 이들이 당장 필요한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줄파산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본격 나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미국도 더 이상 고금리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된 만큼 제2의 SVB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부동산 대출이 많은 은행들을 위험 대상으로 지목했습니다. 영국 그린실과 아케고스 파산으로 2연타를 맞은 크레디트스위스(CS)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스타트업에 특화된 SVB와 달리 일반 소매은행들이 ‘뱅크런’에 직면할 가능성이 아직까지는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생채기에도 놀라는 현 상황이 누구에게 또다시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불안감이 Fed의 ‘빅스텝’ 회귀 가능성을 줄이고 있습니다. Fed가 이번 사건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결국 SVB의 파산 원죄는 돌고 돌다 보면 결국 Fed로 귀결됩니다. 너무 늦게 시작한 금리인상, 전무후무한 초고속 긴축이 결국 SVB를 파산의 길로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SVB가 보유한 채권이 휴지조각처럼 된 것은 Fed의 인플레 오판에서 비롯됐습니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결국 3월 FOMC의 금리 인상폭은 14일에 나오는 2월 CPI가 결정할 전망입니다. 시장 예상치는 전년 동기대비 6.1%, 전월 대비 0.5%입니다. 1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대비 6.4%, 전월 대비 0.5%였습니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년 동기대비 5.5%, 전월대비 0.4% 상승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클리블랜드 연은이 집계한 전망치는 전년 동기대비 6.21%, 0.54%입니다. 근원 CPI 전망치는 각각 5.54%, 0.45%입니다. 계절조정만 아니었다면 금리인상도 없었다?CPI에서 계절조정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노동부는 해마다 2월에 시기적 특수성으로 인해 통계가 왜곡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계절조정을 합니다. 이를 통해 그 해 1월 수치부터 바뀐 계절조정을 통해 수치를 산출합니다. 코로나19 전후로 다른 세상이 된 것처럼 이런 상황 변화를 계절조정으로 보완합니다. 대부분 전월 대비 등락률이 바뀌고 결국 연율로 환산한 수치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Fed 부의장 출신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블라인더 교수는 “CPI를 집계하는 노동부에 불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유인 즉슨 계절조정이었습니다.

낙관론자 중 한 명인 블라인더 교수는 그동안 “인플레이션이 완화하고 Fed는 금리를 많이 못 올릴 것”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계절조정 때문에 본인의 예측 체계가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계절조정이 없었다면 지난해 인플레이션율은 상반기에 대략 11%였고 하반기에 2%였을 것”이라며 “그런데 계절조정으로 인해 수치가 바뀌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계절조정을 반영한 실제 수치는 상반기에 8~9%였고 하반기엔 6~7%대였습니다.


계절조정만 없었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상반기엔 인플레의 고통이 더 컸을 겁니다. 이로 인해 75bp(1bp=0.01%포인트)를 넘어 100bp를 올려야 했을 지 모릅니다. 이에 비해 하반기에 인플레이션은 잡히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SVB가 또 하나의 변수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최종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지금의 논의와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플레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뜨거운 고용시장 때문에 임금은 내려오지 않고 끈적끈적한 서비스 물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인플레 본질이 변하지 않는 가운데 이번 주에 ‘인플레 3종 세트’가 연달아 나옵니다. 13일 뉴욕 연은의 기대 인플레이션율, 14일 2월 CPI, 15엘 2월 PPI 입니다. 15일엔 2월 소매판매도 공개됩니다. 이 수치들이 예상치와 어떻게 나오는 지에 따라 2월 FOMC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립된 변수가 금리 인상폭 결정
오는 22일 FOMC에서 결정될 기준금리만 놓고 보면 이번 주는 밀물과 썰물의 싸움입니다. 금리를 밀어 올리는 밀물같은 물가의 힘과 금리를 내려 빠지게 하려는 썰물같은 SVB발 불안감이 밀당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인사들은 시장에서 둘 중 어느 힘이 큰 지를 보고 금리 인상 폭과 최종 금리 예상치를 결정할 전망입니다.

한가지 묵과할 수 없는 점은 미국의 인플레로 인해 전 세계가 움츠러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확산시킨 인플레 공포로 위축돼 있고 금리인상 고통으로 숨죽이며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인플레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16일 통화정책회의를 여는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해지고 있는 것은 미국과 다른 나라 사정은 너무나 다르다는 점입니다.


한국과 캐나다를 필두로 미국과는 다른 긴축 경로를 밟을 곳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선 환율과 무역수지 등 미국과의 긴축 속도 차이로 인한 파장이 중요한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입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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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