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숨진 채 발견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 전형수 씨(64)가 유서에서 이 대표를 향해 “정치를 내려놓아 달라”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남FC 후원금, 불법 대북송금 등 이 대표 사건에 등장하는 측근이 죽음과 함께 남긴 말이란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정치적 거취뿐만 아니라 이 대표 관련 검찰 수사 및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씨는 6쪽 분량 유서에서 “이재명 대표는 이제 정치를 내려놓으십시오. 더 이상 희생은 없어야지요”라고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9일 경기 성남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 내용과 전씨가 주변에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정황 등을 바탕으로 이 대표 관련 수사에 따른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기에 체육진흥과장, 비서실장, 행정기획국장 등을 지냈다.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정무 보좌는 정진상, 행정 보좌는 전형수”로 불릴 정도로 이 대표와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가 된 뒤 초대 비서실장을 맡아 보좌를 이어갔다.
검찰은 지난달 청구한 이 대표 구속영장에 전씨를 23차례나 거론하며 그를 이 대표의 공범으로 지목했다. 성남FC 사건과 관련해 전씨는 지난해 말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도 했다. 성남FC 사건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때 네이버와 두산건설, 차병원, 푸른위례로부터 부동산 관련 인허가 등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133억5000만원을 성남FC에 후원금으로 내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이 대표 측의 “압박수사가 사망 원인”이란 공세에 검찰은 “한 차례 조사가 전부이며 별도 조사나 출석 요구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전씨는 성남시 행정기획국장을 맡았던 2014~2015년 네이버 관계자들을 만나 성남FC 후원금 지급 방식과 네이버의 정자동 부지 매입, 건축 인허가 및 용적률 상향 등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공익법인인 희망살림(현 주빌리은행)을 통해 2년간 40억원(매년 20억원)을 낸다는 후원 조건이 결정됐다.
전씨는 최근엔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송금에 연루됐을 가능성으로도 주목받았다. 2019년 5월 21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모친상에 조문을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지난 1월 31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화영 전 경기평화부지사 재판에서 이 같은 진술이 나왔다. 쌍방울그룹은 김 전 회장의 모친상 열흘 전쯤인 5월 12일 중국에서 북측과 경제 협력 합의서를 체결해 북한 지하자원 개발 등 6개 분야 사업권을 획득했다. 검찰은 쌍방울그룹이 800만달러를 북측에 보낼 때 이 대표가 개입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김 전 회장 등으로부터 “송금액 300만달러는 이 대표의 방북 비용”이란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이 대표는 더 강하게 진상 규명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사망한 전씨를 포함해 이 대표 관련 사안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인물은 5명으로 늘었다. 위례·대장동 및 성남FC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은 이르면 다음주 이 대표를 불구속기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의 대장동 및 백현동 개발 비리와 관련한 허위 발언의 위법 여부를 다투는 재판도 지난 3일 시작됐다.
김진성/최한종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