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갖춰야 할 조건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조건을 하나 꼽자면 ‘토론 문화’다. 발전적 토론 문화를 주도해야 하는 대표 집단은 정치권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토론을 지켜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일단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말 끊기 일쑤에 윽박지르고 조롱한다. 정치인들의 토론 문화를 보면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는 그들의 토론 행태는 낯부끄러울 정도다. 토론 문화가 발전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발전 역시 요원하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
지난 2월 말 미국에서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는 <모든 논쟁에서 이기는 법(Win Every Argument)>은 다양한 토론에서의 승리 전략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널리스트이면서 24시간 뉴스 채널 MSNBC의 방송 진행자인 메흐디 하산은 책을 통해 ‘승리하는 토론을 위한 16가지 전략’을 공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부터 시작해 심리학을 통해 밝혀진 여러 설득의 기술, 그리고 설득 이론을 뒷받침하는 행동과학을 소개하면서 독자를 차분히 설득해 나간다. ‘팩트가 아니라 감정이다’ ‘증거가 될 만한 영수증을 보여줘라’ ‘말하지 말고 들어라’ ‘부비트랩을 설치하라’ 등 앵커이자 인터뷰어로서 정치 지도자를 비롯해 여러 유명인과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터득한 그만의 필살기를 알려준다.
책은 먼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28년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당시 아테네인들은 반역을 도모한 미틸레네섬을 장악하고 반역자 수천 명을 학살할 계획이었다. 강경파인 클레온이 먼저 열변을 토하며 반드시 처절한 보복과 응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디오도투스가 연설가로 나섰다. 디오도투스는 살육을 통한 보복과 응징은 반란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성급함’과 ‘분노’야말로 좋은 결정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이라고 경고했다. 격렬한 논쟁에 뒤이은 투표 결과 디오도투스의 주장이 승리했다. 수천 명의 사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책은 디오도투스가 논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짚어본다.
‘감정적 연결’과 ‘좋은 일화’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토론과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장착하고 있어야 하는 무기다. 책은 프린스턴대 신경과학과 교수인 유리 하슨 박사의 ‘뇌 커플링(brain to brain coupling) 이론’을 소개한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 들으면 화자와 청중의 뇌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고, 그런 식으로 서로 뇌가 동기화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유머 역시 토론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명한 대중 연설가들은 모두 ‘훌륭한 농담꾼’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끊임없이 유머를 공부하고 연습하라고 강조한다.
“논쟁은 문제를 해결하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서로를 향한 상호 이해의 장으로 이끄는 도화선입니다.” 토론과 논쟁이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면서 진실을 확립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저자는 ‘갈등이 있는 곳에 반드시 논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두가 논쟁의 장으로 더욱 자주 나올 것을 권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