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분양 단지에 2만 명 가까운 수요자가 몰린 와중에 지방 분양시장에선 청약 신청자가 공급 가구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충격적인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부동산 규제를 푼 정부의 ‘1·3 대책’이 지방 분양시장을 악화시키는 ‘구축효과’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도권 외곽과 지방에선 최근 수년간 주택 공급이 활발했던 반면 규제가 집중된 서울에는 새 아파트 공급이 부족했던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규제 풀자 서울로 쏠리는 수요
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주 청약을 접수한 서울 영등포자이디그니티는 분양 첫날 1순위에만 1만9478명이 몰리며 평균 경쟁률 198.76 대 1로 모든 주택형 청약이 마감됐다. 서울에선 도급 순위 100위권 밖 중소 건설사인 한동건설이 분양한 등촌지와인 81가구 모집에도 493건의 청약이 몰렸다.
반면 같은 날 경기도 힐스테이트평택화양은 1548가구 모집 청약에 단 131건만 접수돼 모든 타입이 미달됐다. 전남 담양센트럴파크남양휴튼(71가구)과 경북 경산서희스타힐스(64가구)는 청약자가 각각 10명과 5명에 그쳤다.
국토교통부가 올초 서울 대부분 자치구와 경기 과천·광명·성남 등 인접 지역 규제를 풀자 ‘풍선효과’가 사라지고, 지방 투자 수요가 서울로 다시 몰리는 분위기다.
지난해만 해도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과 장위자이레디언트의 청약 경쟁률이 5.5 대 1과 4.7 대 1가량에 그쳤다. 올림픽파크포레온은 청약 당첨자들의 계약 포기로 계약 마감에 실패했다. 그러나 지난 8일 실시한 이 단지 전용면적 29·39·49㎡ 초소형 899가구의 미계약분 무순위 청약에 4만1540명의 ‘줍줍’ 투자자가 몰렸다.
지방을 비롯해 인천·수원·경기 남북부 등에선 대규모 청약 미달이 잇따르고 있다. 작년 11월 선제적으로 규제지역에서 풀려 반사이익을 노린 경기 안양 평촌센텀퍼스트는 서울의 규제가 풀린 직후 이뤄진 청약에서 1150가구 모집에 350가구가 신청하는 데 그쳤다.
대구와 인천 등 미분양 적체 지역 아파트와 중소 건설사의 지방 분양 단지는 예외 없이 대량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다. 올 들어 청약 마감에 성공한 곳은 부산 에코델타시티푸르지오린, 창원 롯데캐슬포레스트 등 택지지구·공원특례 분양가 상한제 단지 정도다. 최근 수요자가 몰린 더샵부평센트럴시티와 동인천역파크푸르지오 역시 10년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이다. 공급 적체된 지방 분양시장서울 이외 지역에선 신규 아파트 입주도 늘어나고 있어 시장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입주 예정 아파트는 34만9370가구로 지난해 입주 물량(33만2514가구)에 비해 5%가량 많다. 지난해 2만653가구가 입주한 대구는 올해 3만6059가구가 입주한다. 미분양 물량도 1만3565가구(1월 기준)가 쌓여 있다.
울산은 입주 물량이 지난해 3856가구에서 올해 8786가구로 늘어난다. 경기도는 지난해 11만3767가구에 이어 올해 10만898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상당수가 화성·평택과 양주·광주 등 서울 출퇴근이 쉽지 않은 생활권이다.
서울은 입주 물량이 작년 2만4115가구에 그친 데 이어 올해도 2만4310가구에 불과하다. 새 아파트의 희소성이 높아 투자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서울에서도 그동안 분양을 미뤄온 대형 재개발·재건축 단지가 쏟아져 나오면 지역별·단지별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서울에서 완판에 성공한 단지는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낮게 책정했기 때문”이라며 “청약 열기가 계속될지는 앞으로 나올 단지의 분양가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