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기업 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가 반도체 기술 수출의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일본과 함께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하기로 한 네덜란드가 행동에 나서면서 중국의 반도체 산업 고립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다. ASML도 “중국의 기술 도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리셰 스레이네마허 네덜란드 대외무역·개발협력 장관은 이날 의회에 “국가 안보를 위해 특정 반도체 생산 장비에 대한 기존 수출 통제 규정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관련 규정은 올해 여름이 가기 전에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슈라이네마허 장관에 따르면 특정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기업은 앞으로 정부 허가(라이센스)를 받아야 할 전망이다. 그는 제재 대상으로 중국이나 ASML을 언급하지 않았으나 서한을 통해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포함해 높은 사양의 시스템이 제재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DUV 노광장비는 ASML이 독점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구형 모델이다. 노광장비는 웨이퍼라는 반도체 기판에 회로를 그리는 기술을 갖춘 장비다. 회로를 얇게 그릴 수록 반도체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능이 좋아지는 핵심 장비다. 네덜란드 정부는 ASML이 EUV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은 2019년 금지했으나 DUV 장비 수출은 허용해왔다.
ASML은 이에 대해 “DUV 장비를 수출하기 위해 라이센스를 신청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규제 강화가 2023년도 실적 전망치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ASML은 올해 전체 매출은 2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중국 매출은 22억유로로 제자리걸음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로이터는 일본도 이르면 이번주 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그 어느 때보다 지식재산권(IP)과 노하우 유출에 민감하게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ASML은 지난달 한 중국 법인 직원이 최근 자사 기술에 대한 정보를 훔쳤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통해 이 직원이 ASML의 노광장비 시스템과 관련된 세부 기술 정보가 저장된 소프트웨어 저장소의 데이터를 훔쳤다고 보도했다.
베닝크 CEO는 “미중 반도체 전쟁으로 중국이 자체적인 반도체 산업을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중국이 자체 칩 제조 장비를 개발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고 말했다. ASML은 사이버 및 IP 보안 관련 지출을 매년 두 자릿수 퍼센트로 증가시켜야 했다고도 덧붙였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