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 "대출규제 완화" 요구에…정부는 '싸늘'한 이유 [빈난새의 한입금융]

입력 2023-03-09 06:15
수정 2023-03-09 08:58

“고금리로 고통받는 중신용 서민과 1000만 금융 소외 고객에게 빅데이터 기반의 차별화된 신용평가로 리스크 낮춘 중금리 대출을 핵심 수익모델화 하겠다.” (케이뱅크, 2016년 12월 사업계획서)

“합리적 금리로 중신용자에게 신용대출을 제공하겠다.” (카카오뱅크, 2017년 4월 사업계획서)

“토스의 데이터와 고객중심적 서비스 개발을 통해 일반 금융소비자뿐 아니라 금융소외계층까지 포용하겠다.” (토스뱅크, 2021년 6월 사업계획서)


기존 은행에서 대출이 어려웠던 중·저신용자를 포용하겠다는 포부로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들이 금리 인상기 '건전성 역풍'을 맞고 있다. 금리 상승이 이어지면서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데, 중·저신용자 대출을 크게 늘렸던 인터넷은행들은 이런 잠재 부실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이미 지난해 말 연체율이 1년 새 두 배 이상 뛰었고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이 가장 높은 토스뱅크도 비슷한 사정이다.

보통의 금융사라면 이럴 때 연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은 보다 소극적으로 내줄 것이다. 대출·이익을 늘리는 것보다 건전성 관리를 우선할 필요가 있어서다. 저축은행 카드사 등 2금융권에선 이미 작년 말부터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은행들은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 금융당국과 약속한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목표치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 3사는 모두 올해 지난해보다 2~7%포인트가량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

이렇다 보니 인터넷은행들 사이에선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지금은 "은행은 공공재"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은행업의 경쟁 활성화'가 금융당국의 최우선 과제로 올라선 때다. 인터넷은행 입장에선 "대출 규제가 완화되면 시중은행에 대항해(?) 대출 금리 경쟁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금융당국의 반응은 탐탁치 않다. 최근 금융사들과 잇달아 간담회를 열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개선책이 나온다면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 의무 완화를) 적극 검토할 소지가 있다"는 발언을 내놓으며 업계의 기대감이 높아졌던 것과 정반대다. 어떤 규제길래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비중 규제는 2021년 도입됐다. 그 해 금융위원회는 연초부터 중금리 대출(신용평점 하위 50% 차주에 대한 대출) 확대를 중점 과제로 내걸고 5월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확대를 촉진할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금융위는 "인터넷전문은행은 ICT와 금융의 융합을 통해 금융산업의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고 데이터 등 혁신적인 방식으로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을 적극 공급할 것이란 기대로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는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은 인터넷은행들이 인가를 받을 때 제출한 사업계획에 반영된 내용으로 당국과의 약속에 해당하므로 성실한 이행이 필요하다"고 뒷받침했다.

그 결과 금융위는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그리고 당시 출범을 준비 중이던 토스뱅크로부터 2021~2023년간 전체 가계 신용대출 잔액 대비 중·저신용자 신용대출 비중을 얼마까지 확대할 것인지 계획서를 제출받고 목표치를 정해줬다. 최소한 전체 대출 잔액의 3분의 1 정도는 중·저신용자에게 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2020년 말 이 비중이 각각 10.2%, 21.4%에 불과했다. 두 은행 모두 지난해 말 25%를 달성했고 올해 말에는 각각 30%, 32%까지 늘려야 한다. '잔액 0'으로 출발한 토스뱅크는 지난해 말 40%를 넘긴 데 이어 올해 말엔 44%까지 높여야 한다.

이 공급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인터넷은행은 신사업 진출을 위한 인·허가를 받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고신용자에 대한 역차별, 건전성 리스크 우려 등 반론도 제기됐지만 금융당국은 "‘중금리대출 시장 혁신’을 내걸고 출범한 인터넷은행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을 취급하는 게 설립 취지에 맞는 것"이라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규제 완화" 목소리는 왜규제 도입 후 2년이 흘러 지금 완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일단 인터넷은행의 건전성 지표가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저신용자 대출을 급격히 늘린 데 따른 부메랑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인터넷은행 3사의 연체 대출(연체 기간 1개월 이상) 잔액은 2915억9100만원이었다.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지난해 1분기 말(1062억원)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은행별로 보면 대출 잔액이 가장 많은 카카오뱅크가 1377억원, 케이뱅크가 920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각각 2배, 2.5배 가량 늘어난 규모다. 2021년 10월 영업을 시작한 토스뱅크도 한 달 이상 연체 대출이 619억원에 달했다. 가장 공격적으로 중·저신용자 대출을 확대한 여파로 풀이된다.


연체율로 보면 카카오뱅크는 2021년 말 0.22%에서 작년 말 0.49%로, 케이뱅크는 0.41%에서 0.85%로 뛰었다. 토스뱅크 연체율도 작년 1분기 0.04%에서 3분기 0.3%로 수직 상승했다. 작년 말 4대 은행의 연체율이 0.16~0.22%인 데 견주면 높은 수준이다.

금리 상승 기조가 더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올해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더 늘려야 하는 인터넷은행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목표치를 설정했던 2021년에 비하면 지금은 금리와 경제 환경이 판이하게 달라진 게 사실"이라며 "한시적으로라도 규제를 완화하거나 비중 산출 방식을 수정하는 방안이 유효할 수 있다"고 했다. 당국 반응은 '싸늘' 이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인터넷은행은 설립 취지상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가 우선 과제여야 한다는 게 당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인터넷은행들이 출범 이후 편리한 뱅킹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는 상당 수준 달성했지만 중·저신용자 대출 공급은 자발적인 노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비중 목표치를 도입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저신용자를 포용하겠다는 사업 계획으로 인가를 받았는데 이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라이선스를 유지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복현 원장도 지난달 28일 인터넷은행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장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를 고려할 때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 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완화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의 건전성 현황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있으며 아직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전체 대출에서 중·저신용자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부실 뇌관'으로 번질 우려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