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만 다녀도 되면 지원할게요.”
최근 한 기업에서 사무보조 업무 직원 채용공고를 내자 한 지원자가 회사에 문의한 내용이다. 지원자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이 회사 대표는 자주 있는 일이라 이유를 충분히 짐작한다고 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실업급여. 고용보험에 가입한 날이 180일 이상이면 퇴사 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실업급여 하한액은 하루(8시간 근무 기준) 6만1568원, 한 달이면 185만원이다. 반면 올해 최저임금은 월 201만580원, 4대 보험료를 공제하고 실수령액만 따지면 매일 출퇴근하면서 받는 월급이나 놀면서 실업급여를 받으나 도긴개긴이다. 정부, 뒤늦게 실업급여 개선 착수정부가 이런 상황을 막겠다며 고용보험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노사단체에 고용보험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며 참여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2021년 7월 실업급여 반복 수급 횟수에 따라 지급액을 줄이고 지급 대기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제도개선안을 내놓은 지 1년8개월 만이다. 이번 TF에서는 앞선 대책에 덧붙여 최저임금에 연동되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대폭 낮추는 대신 수급 기간(현행 4~9개월)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가 올해 초 업무계획에서 밝힌 대로 실업급여 제도를 기존의 보장성 강화에서 노동시장 참여 촉진형으로 바꾸겠다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실업급여 지급액을 올리고 수급 기간을 늘린 데다 실업급여에 연동되는 최저임금까지 급격하게 끌어올려 청년들의 구직 의욕을 꺾었던 정부가 늦게나마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메뚜기 구직자’를 양산해 고용시장을 망가뜨리는 정책은 실업급여제도뿐만이 아니다. 엉터리 입법과 법 해석으로 사용자들로 하여금 1년 미만 단기 계약을 하도록 유도하는 연차수당 문제도 반드시 손봐야 하는 문제다. '연차수당 26일' 문제도 손봐야2017년 정부와 국회는 저연차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겠다며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기존에는 입사 2년차까지 연차휴가는 총 15일, 즉 입사 첫해 10일을 쉬었다면 2년차엔 5일밖에 못 쉬는 문제가 있다며 1년차에 쉰 날을 2년차 휴가(15일)에서 빼는 조항(60조 3항)을 삭제한 것이다. 어떤 보완 장치도 없이 만들어진 부실 입법 결과는 1년 계약직에게도 총 26일의 연차수당 청구권이 있다는 행정해석으로 이어졌다. 이후 대법원이 1년 계약직의 경우 연차휴가권은 11일이고, 1년에 하루라도 더 근무하면 ‘26일 휴가권’이 생긴다고 일부 바로잡았지만, 중소기업 사장들은 “어찌 됐건 1년 이상 근로계약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1년 미만 근로계약을 하면 퇴직금도 안 줘도 된다.
국내 전체 근로자 중 1년 미만 근속계약 근로자 비중은 30%가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고용지표는 지난해의 10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근로자에게 근로의욕 고취는커녕 초단기 취업을 조장하고, 사용자에게도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을 ‘권장’하는 셈이다. 일자리를 망치는 일자리정책을 바로잡는 게 노동개혁보다 더 급한 일이다.
백승현 경제부 차장·좋은일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