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이 지니는 위상으로 전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우리나라도 그 충격에서 예외가 아니어서 국제투자자들은 자국 금융기관이 흔들리자 우리나라에 투자했던 자금을 빼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외환·금융시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금융시스템이 흔들리고 투자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금융위기는 그 자체가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더 나아가 실물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1929년 주가 폭락으로 상징되던 대공황 때 역시 주식시장에서의 손해도 있지만, 결국 실물경기 침체의 장기화가 미국에 큰 고통을 줬다.
금융 불안이 실물 침체로 이어지는 데는 몇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금융위기 상황에서 주가 하락은 부(富)를 줄여 개인 소비를 감소시키고,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게 되면서 자금조달비용 상승으로 투자가 위축된다. 둘째, 통화가치 하락은 수입품 가격을 상승시켜 인플레이션 압력을 만들고 그 결과 국민의 실질구매력을 줄여 이 역시 소비와 투자를 감소시킨다. 셋째,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면 대출 상환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신뢰가 약화하면서 신용을 제공하는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신용 규모가 감소하면서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위축된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음에도 2008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3% 수준으로 비교적 양호했고, 직후에 실물경기 부진이 나타나던 2009년 성장률이 0.8%로 급락하기는 했지만 2010년 다시 6.8%로 반등하며 실물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가운데 이후 경제가 거의 정상화된다. 심각한 수준으로 한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던 1997년 외환위기 경우도 직후인 1998년에는 -5.1%까지 경제성장률이 급락했지만, 이후 1999년 11.5%, 2000년 9.1%까지 빠른 속도로 실물경기가 회복된다. 여기에는 수출 증대에 따른 성장률 제고가 결정적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나라와 아시아권에서 발생한 것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경기는 비교적 양호했고 따라서 국제시장에서 수출이 확대될 수 있는 여건이었다. 실제로 당시의 전년 동기 대비 수출 증가율은 경기가 회복되던 1999년에는 8.1%, 2000년 20.4%에 이를 정도로 컸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이런 상황은 비슷했는데, 2010년 28.6%, 2011년 19.0%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수출 증가가 있었다. 따라서 금융위기의 후유증이 실물경기를 억압할 수 있었음에도, 수출 증대가 이를 상쇄하며 경제가 급반등한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국제금융시장 연계가 강하지 않던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이 심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2007년 14.2%에 달하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2008년 9.7% 수준까지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고, 2009년 9.4%, 2010년 10.6% 등으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유지했는데, 당시 중국은 위기에 따른 충격도 크지 않았고, 오히려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섰다. 따라서 중국 경기 부양정책의 수혜를 수출 증대로 누리기에 좋은 여건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 이런 중국발 수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국은 당시 경기 부양과 그 이후 지방정부와 기업을 비롯한 주요 경제주체가 부채에 기반한 지출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는데, 그 결과 재무 건전성이 크게 악화해 현재 시점에서 이런 대규모 경기 부양정책을 재현하기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의 리오프닝이 우리 경기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충분하지 않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경기마저 하향 국면으로, 이 역시 경기 반등에 기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난 2월 반도체 수출이 작년 동기 대비 거의 반토막 난 상황이다.
따라서 가계와 기업 모두는 금융위기 이후 경기 급반등이 이뤄졌던 1997년과 2008년 금융위기의 경험과 달리 지속적인 수출 악화 문제와 실물경기 부진에 시달리는 시간이 지속할 수 있다는 각오로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수출 기업들이 수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전후방 지원하는 것이 결국 경제 전반을 살리는 길임을 인식하고 정책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