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인수에 '소유 분산기업 지배구조' 강조한 방시혁…尹 코드 맞추기?[오형주의 정읽남]

입력 2023-03-04 09:30
수정 2023-03-04 12:12


“SM엔터테인먼트의 매니지먼트 팀이 대주주 없이 분산 점유된 회사를 본인들의 마음대로 운영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방시혁 하이브 의장)
“소유가 완전히 분산된 기업들은 과거 공익에 기여하는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다.”(윤석열 대통령)
尹처럼 '소유 분산기업 지배구조' 언급한 방시혁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 3일 공개된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SM엔터 인수 시도를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SM 지분율이 미미한 현 경영진(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이 카카오와 손을 잡고 창업자이자 기존 최대주주였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영향력을 축소시킨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방 의장의 발언을 접한 한 정치권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소유 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을 강조하면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소유 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지배구조 구성과 관련해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고민을 함께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윤 대통령의 발언은 확고한 지배주주가 없는 KB·신한·하나·우리 등 은행권을 배경으로 한 금융지주와 포스코·KT 등을 겨냥해 나왔다. 이들 회사 CEO들이 지배주주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수차례 연임하며 장기 집권을 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공교롭게도 방 의장 역시 SM 인수를 추진하며 윤 대통령과 비슷한 명분을 내세웠다. 그는 “나는 SM같이 훌륭한 회사가 좋은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에 굉장히 오랫동안 슬퍼했던 사람”이라며 “이번 지분 인수를 통해서 지배구조 문제를 대부분 해결했다”고 말했다.

하이브는 이수만 전 총괄의 SM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총괄의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과 SM간 수수료 지급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지원 하이브 CEO도 지난달 22일 SM 팬과 아티스트, 구성원, 주주 등에 보낸 입장문에서 “지분 인수 과정에서 SM과 이 전 총괄의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했다”며 “SM은 앞으로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이자 주주 권익을 최우선시하는 기업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도 하이브가 제기한 의혹에 '화답'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금융권 복심’으로 꼽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최근 행보는 주목할만하다. 이 원장은 지난달 22일 자산운용사 CEO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상점을 지켜줄 종업원을 구하는데 그 종업원이 물건을 훔치는 습관이 있다면 ‘이건 안 된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의 발언 역시 소유 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구성과 관련해 자산운용사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 행사 등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맥락 속에서 나왔다.

이 원장은 지난 2일에는 증권사 CEO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하이브의)SM 공개매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공정거래 의혹 등이 제기됐는데 금감원에서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앞서 하이브는 SM 공개매수 중 특정 세력이 과도하게 주가를 끌어올려 공개매수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이브는 지난달 16일 “SM 발행주식 총수의 2.9%에 달하는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이 원장은 “위법 요소가 있는 수단이 동원됐다면 정부 출범 이후 저희가 공표한 불공정거래에 대한 무관용 원칙 등에 비추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법과 제도상의 최대한 권한을 사용해서 책임을 물을 것이고 위법을 통한 경제적 이익 취득이 성사되지 않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투자업계서는 “금감원장이 특정 상장사가 제기한 불공정거래 의혹에 적극 대응을 주문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 관계자는 “하이브가 SM을 인수하면서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부각한 것은 결국 정권의 지지를 얻기 위한 일종의 ‘코드 맞추기’로 볼 수 있다”며 “반대 측인 ‘카카오-SM 현 경영진 연합’이 여론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면 역시 지배구조 이슈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