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변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지리적 특성이 그 국가의 정치와 국제관계 등을 정한다는 지정학을 넘어 ‘지경학(Geo-eonomics)’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수능뿐만 아니라 논술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경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경학은 무엇일까지경학은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도구를 사용해 타국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지정학은 ‘위치’가 중요했다면, 지경학은 ‘경제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1990년대 초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체제가 종식됐습니다. 세계화가 확산되고, 세계는 효율적인 분업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됐죠. 2000년대 정보기술(IT)산업이 부흥하면서 초국가 글로벌 기업이 득세했습니다. 글로벌 권력은 분산됐고, 국가의 힘은 약해졌죠.
이 과정에서 중국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성장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판도가 달라졌습니다. 금융위기는 7개의 선진국 모임인 G7이 주도했던 위상을 흔들었습니다. 이 틈새를 중국이 파고들었습니다. G2라는 이름하에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축이 수면 위로 드러났죠. 중국과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갈등을 빚었습니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국가의 힘이 약해진 데 따른 반작용이었다는 학계의 설명이 있습니다. 중국은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한 애국주의가 이데올로기로 더욱 강하게 자리잡았고,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도한 자국 우선주의가 정치적으로 호응을 받았습니다. 중요해지는 지경학자국 우선주의는 글로벌 경제 체제를 흔들었습니다. 기술은 선진국이 개발하고, 물건은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하는 ‘효율적 생산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세계로 퍼졌던 공장을 자국으로 다시 유치하기 시작했죠(리쇼어링 정책).
이런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까지 이어졌죠. 무역을 통해 비교우위를 가진 물건을 각자 거래하면서 상호이익을 추구했던 국가들이, 이제는 그 물건들을 무기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뿐 아니라 농산물, 광물 그리고 기업의 첨단기술까지 갈등의 대상이 됐죠.
지경학의 시대에서는 경제적 도구를 사용해 자국과 타국의 국제관계를 움직인다고 했죠. 그렇다면 어떤 도구들이 쓰일까요. 우호적인 국가와의 경제 교류를 강화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IPER(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를 내세우고 있죠. 한국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인도에 이르는 글로벌 경제 안보 플랫폼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IPEF는 이전에 중국 주도하에 아시아 국가들을 묶으려던 시도인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대응하는 성격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엄지를 들고 외치는 꼴이죠. ‘나랑 놀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맥도날드가 있는 국가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자유무역이 활발한 나라끼리는 전쟁보다 무역을 하는 게 더 이익이라는 이유 때문인데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도 보호무역은 전쟁을 야기하며, 영구적인 평화는 자유무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반세계화 흐름 가운데서 지경학적 위험이 높아진다면, 각 나라 간 갈등을 조절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라도 경제적 이익을 지켜야 할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죠. 이제는 고전게임이 돼버린 스타크래프트를 생각해볼까요. 초반에는 붙어 있는 적(지리적 근접성)을 상대로 속도전을 벌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미네랄과 가스를 누가 많이 확보
하느냐(경제적 도구)가 승패를 가릅니다.
중국과 대만의 갈등만 하더라도 지경학적 사례인데요. 표면적으로는 역사적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대만의 반도체 기술이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을 갖지 못하도록 막고 있죠. 첨단 반도체 없이는 4차 산업혁명도 물건너갑니다. 그러니 중국은 세계적인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 TSCM가 있는 대만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싶어하지요.
고윤상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1. 지경학은 무엇이고, 왜 중요할까?
2. 지정학과 지경학은 무엇이 다를까?
3. 반세계화와 지경학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