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춘자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 대표(사진)는 한국 여자골프 역사의 ’산증인’이다. 1978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여자 프로골프 테스트에서 고(故) 한명현, 고 구옥희, 고 안종현 씨와 함께 합격해 ’회원번호 1번‘을 따냈다. 같은해 추가 테스트에서 김성희, 이귀남, 배성순, 고용학 씨도 합격해 8명의 프로선수, 3개 대회 총상금 150만원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가 시작됐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서 선수 출신으로서 상근직을 맡아 본격적으로 선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한 주인공 역시 그였다.
강 대표가 KLPGT를 떠난다. KLPGA 상근부회장으로 여자골프를 진두지휘한 지 만 11년, KLPGT 대표를 맡은지 3년만이다. 강 대표는 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년의 임기를 마치고 일선에서 물러나려 한다”고 밝혔다.
남자대회의 상금 일부를 떼어내 ‘번외경기’로 치르던 KLPGA는 이제 남성 골프대회를 넘어 한국 골프시장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강 대표를 비롯한 1세대 여성 골퍼들이 단단하게 다진 토대 위에 박세리 박인비 고진영의 성공신화가 나왔고 지금도 국내에서 매 대회 새로운 주인공이 탄생하고 있다.
퇴임의사를 공식발표한 이날, 강 대표가 떠올린 것은 40년 전 처음 일본 대회에 섰던 순간이었다. "상금규모는 비교도 안될 정도에 골프장 환경도 너무 좋아서 '프로선수들의 천국'이라고 느껴질 정도였어요. '한국은 언제쯤 따라잡을 수 있을까' 막막했지만 지금 KLPGA투어는 이제 상금규모나 대회 수에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 절대 밀리지 않아요. 선수들의 실력은 일본을 훨씬 웃돈다고 자신합니다. 매 대회마다 감동스토리를 만들어낸 선수들, 그리고 한국 여자골프를 응원해주신 팬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지요."
그가 취임하기 직전인 2019년 30개 대회 총상금 253억원, 평균 상금 8억 4000만원이었던 KLPGA투어는 그의 취임과 함께 매해 성장해 올해는 32개 대회 총상금 312억원, 평균상금 9억7000만원까지 늘어났다. 2월부터 시즌을 시작해 올해 38개 대회, 총상금 44억3000만엔(약 426억3200만원), 평균상금 1억1600만엔(11억1600만원) 규모로 열리는 JLPGA 투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강 대표의 가장 큰 무기는 친화력이다. 대회를 하나라도 더 유치하고, 규모를 조금이라도 더 키우기 위해 스폰서를 찾아다니고 끊임없이 다양한 제안을 했다. 그는 "후배들이 더 신나게 대회를 즐기고 여자골프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면 제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3년간 KLPGT를 이끄는 동안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위기도 적잖았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때로 지난해 10월 위믹스 챔피언십을 꼽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국내 대회를 공동주관해오다 처음으로 같은 기간 별도로 치른 대회다. 하지만 스폰서의 사정으로 취소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새 스폰서를 구해 성사됐다. 어렵사리 열린 대회에서는 유효주(26)가 생애 첫 승으로 짜릿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써내 더욱 풍성해졌다.
"왜 LPGA투어와 별도의 대회를 개최하냐는 비난을 받으며 열었던 대회였어요. 10월이면 다음년도 시드권 자격을 두고 상금 100만원이 아쉬워지는 시기입니다. 상위 30위 선수들만 출전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손놓고 한주를 쉬어야 해요. 그런 후배들을 생각하면 대회가 그저 취소되도록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죠." 강 대표는 "시상식을 보는데 제가 다 눈물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올해 같은 기간에 더 멋진 대회가 준비되어 있다"고 귀띔했다.
정규투어만큼이나 애정을 갖고 키운 것이 드림투어(2부), 점프투어(3부)다. 돈이 몰리는 정규투어와 달리 2,3부투어는 대회 스폰서 잡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강 대표는 "드림투어, 점프투어는 한국 여자골프 저력의 원천"이라며 애정과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평생을 골프와 함께 해왔기에, 이제 새로 발을 딛는 인생 2막 역시 골프로 채우고 싶단다. 강 대표는 "든든한 후배들이 있기에 한국 여자골프의 미래는 더 밝을 것이라 믿는다"며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