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군 부사관 충원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급 장교를 배출하는 주요 통로인 학군장교(ROTC) 경쟁률 역시 7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병사 월급 200만원' 정책이 군의 허리인 부사관·장교의 이탈이라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일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2년 육·해·공군은 부사관 1만1107명을 채용할 계획이었으나 실제 충원 인원은 9211명(82.9%)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러한 충원율은 전년 대비 7,3%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3군 중에서는 육군이 부사관 충원율이 77.1%로 가장 낮았다. 공군은 105%, 해군은 88%를 기록했다. 해군은 함정에서 근무해 수당이 많고 공군은 관련 업계 재취업에 유리한 반면 육군은 격오지 근무비율이 높다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초급간부 충원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ROTC도 지원율이 급감하는 추세다. 지난해 육·해·공군 ROTC 지원율은 2.39배(정원 3511명/지원자 8405명)로 2016년 3.95배에 비해 절반 가량 감소했다. 수도권에서는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도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사 월급 10년 새 771% 올랐는데 … 부사관은 186%↑
부사관·ROTC 기피 현상이 심화하는 것은 병사 처우가 급격히 개선된 데 비해 초급 간부에 대한 처우가 제자리걸음 수준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013년 12만9600원(병장 기준)이었던 병사 월급은 올해 100만원으로 10년 새 771% 증가했다. 부사관 월급(하사 1호봉 기준)은 2013년 95만300원에서 올해 177만800원으로 18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병사 월급 200만원'이 실현되면 부사관과 병사의 월급이 역전될 수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2023~2027년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병사 월급을 150만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적금 개념인 '내일준비자금'을 월 55만원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2023~2027 국방중기계획에는 부사관 월급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2022~2026 국방중기계획에는 2025년까지 하사 1호봉 월급을 192만원까지 늘린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실제 병사 월급 인상이 부사관·장교 지원 동기를 저하시킨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한국국방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병 급여 인상이 초급간부 지원 의사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신체검사 대상자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병사 월급을 현행 수준(100만원)에서 205만원으로 인상하면 장교 지원 의사는 현재 대비 58,5%, 부사관 복무 의사는 76.5%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를 작성한 민광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인력연구센터 연구원은 "2025년까지 병사 월급이 150만 원으로 인상될 경우에는 초급간부와 병사의 급여 차이가 10~20%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어 초급간부 급여의 비교우위는 현재보다 더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병 월급 200만원+장교 월급 5% 인상 시 10조 소요 정부는 지난해까지만해도 병사 월급을 이렇게 급속하게 올리려던 계획이 없었다. 지난해 대선 전 까지만 해도 말이다.
국방부가 2021년 발표한 2022~2026년 국방중기계획에서는 오는 2025년까지 병장 월급을 하사 봉급의 50% 수준(96만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을 공약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정부는 지난해 2022년 68만원이었던 병장 월급을 2023년 100만원, 2024년 125만원, 2025년 150만원까지 인상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문제는 병사 월급 인상에 맞춰 부사관·장교 급여를 올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병사 월급을 200만원으로 올릴 경우 올해 국방예산(57조1268억원)의 9%에 달하는 5조1000억원이 매년 추가로 든다. 여기에 부사관·장교 월급을 현행 대비 5%만 늘려도 연간 군 인건비 예산으로 5조325억원이 추가로 든다고 안철수 국민의힘 대표 후보(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해 1월 추산했다. 올해 국방예산의 17.7%에 달하는 금액이 월급 인상에만 쓰이는 셈이다.
여기에 특수직 공무원인 부사관의 월급을 올릴 경우 비슷한 수준의 일반 공무원들에 대한 급여 인상 압력이 높아질 것을 고려한다면 부사관·장교 월급 인상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진짜 살기 힘들다" 해군 하사 '눈물의 월급명세서'부사관·장교 지원을 기피하는 원인은 이 뿐만이 아니다.
실제 부사관·장교들은 △강원·경기 등 격오지 근무 △근무지 순환으로 인한 잦은 이사 △야근·휴일 수당 부재 등을 직업군인의 단점으로 꼽는다.
군은 부사관·장교 지원을 독려하기 위해 '단기복무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부사관은 750만원, 장교는 900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50% 증가한 금액이다. 다만 2006년에도 500만원이었던 부사관 단기복무 장려금은 일시적으로 줄었다가 다시 늘어 16년 째 제자리걸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근무환경에 부사관들은 익명 게시판에 연이어 자신들의 사연을 올리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자신을 해군에서 복무하고 있다고 소개한 A 하사는 지난 2월 자신의 급여명세서를 올리며 "기본급만으로는 살기가 힘들다. 격오지에서 근무하여 영외 급식 수당을 제하고 수당이 들어오는데 초과근무를 안 하면 진짜 너무 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A하사의 월급명세서에는 봉급 177만원과 정근가산금 1만5000원, 직급보조비 16만5000원이 찍혀있었고 각종 세금을 제한 실수령액이 169만5970으로 기재됐다. 다만 수당들을 붙이면 하사 1호봉이 실제 수령하는 금액은 220~230만원이라는 게 군 관계자의 증언이다.
공군에서 복무하고 있는 초급장교 B씨는 자신의 독신자 간부숙소 사진을 찍어 올리며 "정말 이러한 방을 사람이 살라고 주는 것인지 최소한의 개인 공간도 보장되지 않는다"며 "초급간부 삶의 현실은 감옥과 같다"고 털어놓았다.
간부 충원난·저출산 '이중고'에 병력 유지 '비상' 부사관·장교 수급난으로 군의 '간부 중심 인력 전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023~2027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군은 오는 2027년까지 50만의 상비병력을 유지하기로 했다. 올해 20만1000명인 부사관은 오는 2027년까지 20만 2000명 수준으로 늘리고 4만5000명 수준인 군무원도 2000명 더 늘리기로 했다.
이러한 병력 유지 안은 인구 감소에 따른 '미봉책'에 가까운 해법이지만, 부사관·장교 충원율과 현역병 입영자 수가 동시에 줄어들면서 그마저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군 안팎의 평가다.
정부는 단기복무장려금과 각종 수당 인상. 간부숙소 신축 등을 통해 초급 간부들의 복무여건을 개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한 관계자는 "병역 자원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초급간부 지원율 하락에 대해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경제적 인센티브 추가 확대, 장기복무 선발 비율 확대, 전역 후 재취업 여건 보장 등 초급간부의 복무여건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우수한 인재가 군의 간부로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오른 병사 월급만큼이나 부사관·장교 월급도 오를 수밖에 없다"며 "급격한 월급 인상은 자제하고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