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구매를 고려할 때 먼저 따져봐야 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충전이다. 전기차 차주들은 ‘집밥’(집 주변이나 아파트 충전기)이나 ‘회사 밥’(회사 주변 충전기)이 없으면 ‘아직은 이르다’고 말한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주변에 부족할 경우 불편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전기차 충전기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전기차 등록 대수 증가세를 따라잡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올해는 전기차 충전기 보급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충전기 업계는 인프라 확대를 위한 자금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내세우며 마케팅도 확대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빠르게 시장에 진입 중이다.
지금 전기차 충전 시장은 이동통신 시장의 초창기 모습과 매우 닮았다. 과거 011, 016, 017, 018, 019 등 이동통신 서비스 고유번호가 많았다. 각 사업자는 가입자 확보를 위해 경쟁을 펼쳤다. 1990년대 말부터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 KTF(현 KT)의 한솔엠닷컴 인수로 현재의 3사 체제가 굳어졌다. 업계 재편이 끝난 시점인 2002년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전기차 충전이 ‘주유소’가 아니라 이동통신과 닮은 이유는 인프라이면서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진 사업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사용자들은 접근성이 좋은 공간에 설치된 충전기를 주로 사용한다. 이 충전기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서비스 업체들은 각각의 고유 카드나 앱이 있다. 여기서 주유소와는 차별점이 생긴다. 바로 가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충전기 업체는 주로 충전기가 설치될 아파트나 건물을 주요 영업 대상으로 삼지만, 최종적으로는 고객 서비스에 초점을 맞춘다. 최종 소비자들이 아파트에 설치될 충전기 브랜드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산업의 성장 과정도 전기차 충전과 이동통신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두 산업 모두 정부 주도→플레이어 등장→가입자 경쟁→사업 재편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전기차 충전 시장 초기에는 국가보조금이 시장 성장을 주도했다.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면 국가 보조금으로 일정 부분 설치비와 수익이 보장되다 보니 다양한 업체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2020년부터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이 줄어들고 있다.
때마침 시장 판도를 바꿀 만한 큰 호재가 등장했다.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새 아파트의 경우 총주차면의 5%, 구축 아파트는 2% 이상 규모로 전기차 충전기를 3년 이내 의무 설치해야 한다. 2025년 기준 완속 충전기 수만 약 50만 대로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완속 충전기 업체는 30개사 이상으로 추정된다. 보급량 기준으로는 파워큐브, 에버온, 차지비가 빅3로 꼽힌다. 이어 GS커넥트, 스타코프, 플러그링크, 휴맥스이브이, 이지차저 등의 업체들이 활발히 충전기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상위 10개사들은 투자유치를 통해 두둑한 실탄을 마련한 상황이다. 특히 에버온, 플러그링크, 이지차저 등은 100억원 이상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대기업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에버온에 100억원을 투자했고, 급속충전기 1위인 에스트래픽의 전기차 충전사업부도 인수했다. GS에너지는 차지비 지분 50% 이상을 약 500억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플러그링크 역시 지난해 투자유치에서 LS네트웍스로부터 투자금을 받았다.
각 업체는 마련된 실탄을 충전기 확대에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투자한 대기업은 물론 카카오모빌리티, 네이버, 티맵모빌리티와 같은 빅테크와 협업한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향후 전기차 충전 서비스도 업체 간 ‘합종연횡’을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적어도 몇 년간은 부족한 충전 인프라가 보급되면서 서비스가 크게 발전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태호 유비쿼스인베스트먼트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