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0년까지 국산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술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의 ‘K-클라우드’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국내 기업 간 정부의 AI 반도체를 활용한 데이터센터 구축 사업을 따내기 위한 합종연횡이 벌어지고 있다.○K-클라우드 사업 ‘눈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6일 국산 AI 반도체 기반 데이터센터 구축 및 AI 서비스 개발 등 ‘K-클라우드’ 사업 공고를 냈다. 올해 376억원으로 시작해 2025년까지 1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금액만 보면 사실 ‘코끼리 비스킷’이다. 대규모 반도체 사업에서 몇백억원, 몇천억원은 큰 투자 금액이라고 하기 어렵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몇십억원짜리 사업의 나열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 이 사업에 주목하는 이유는 대규모 부지 조성과 데이터센터 구축 등이 연동돼 있어서다. 특히 ‘AI 반도체(NPU) 팜’ 사업은 고성능 연산이 가능한 저전력 데이터센터를 광주(AI 집적단지)에 1곳, 민간이 주축이 돼 조성되는 1곳 등 총 2곳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곳에서 AI 서비스를 실증하고 올해 1차 시범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 사업에 선정될 경우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상당폭 줄일 수 있다. 보다 빠르게 첫발을 뗄 수 있는 셈이다. 국내 사업자 간 파트너십 구축이 K-클라우드 사업과 연동돼 진행되는 것도 업체들로서는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 좋은 파트너십을 갖춰야 사업에 탄력을 받을 수 있어서다.○짝짓기 탐색전 치열특히 이번 사업 공고는 국내 클라우드, AI 반도체, AI 서비스 회사가 각각 2개 회사 이상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렸다. 당초 NHN클라우드는 국내 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인 사피온, KT클라우드는 리벨리온, 네이버클라우드는 퓨리오사AI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각각 2개 이상’이라는 조건 때문에 추가적인 파트너십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주관사도 1곳으로 제한된다. KT클라우드가 NHN클라우드와 손잡으면서 주관사 자리는 둘 중 하나만 차지하는 식이어야 하는 셈이다. 정부가 이런 조건을 내건 것은 업계 전체의 성장과 빠른 성과 달성에 이 방식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청 기한은 다음달 20일까지로 촉박하다.
업체들은 빠르게 탐색전을 벌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눈치작전이 벌어지는 중”이라며 “가장 좋은 대상을 선정하기 위해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AI 반도체 기술 ‘성큼성큼’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이른 시간 내에 상당한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 것도 업계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박성현 대표가 2020년 창업한 리벨리온은 지난해 금융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반도체 이온(Ion)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 13일 비전 및 언어 생성 AI에 사용될 수 있는 후속작 아톰(Atom)을 출시했다고 발표했다. 전작은 TSMC의 7나노 공정을 적용했는데 이번에는 삼성의 선단 공정이 적용된 데이터센터향 제품이다. 국내에서 비전모델과 언어모델을 모두 지원하는 제품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업 후 2년여 만에 글로벌 수준의 AI 반도체가 나온 것이다. 박 대표는 “소프트웨어 최적화에 집중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퓨리오사AI도 글로벌 AI 플랫폼 회사인 허깅페이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챗GPT 등 초거대 모델을 타깃으로 하는 2세대 칩 개발에 나섰다고 밝혔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양산형 칩 설계를 완료하고 내년 상반기 중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SK그룹 계열 사피온은 2020년 이미 X220 모델을 상용화해 NHN의 데이터센터 등에 사용하고 있다. SK텔레콤의 AI 컴퍼니 전환에도 역할을 할 전망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