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삼립은 국내 양산빵 시장의 독보적인 기업이다. 시장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 딱히 경쟁자라고 해봐야 롯데제과 정도다. 이런 SPC삼립에 ‘눈엣가시’ 같은 기업이 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다.
독창적인 기획력과 전국 1만7000여 개에 달하는 ‘편의점 플랫폼’을 무기로 ‘삼립 왕국’을 위협하고 있다. 푸드코아라는 중소기업과 제휴해 지난해 5월 출시한 연세우유빵 시리즈는 1일 현재 누적 판매량이 약 2000만개에 달한다. SPC삼립의 포켓몬빵(약 1억개)에 필적할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CU 플랫폼에 올라타기만 하면 ‘대박’CU가 중소 식음료사의 ‘등용문’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BGF리테일이 상품을 기획하고, 중소 제조사가 만들면 전국 CU 매장을 통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경쟁사인 편의점 GS25(운영사 GS리테일)가 대기업 계열의 제조사와 협업해 기획 상품을 만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CU에 진열된 기획 상품 중 90%가량이 중소 제조사가 만든 제품이다. CU가 업계 최초로 내놓은 RTD 하이볼이 대표적이다. 젊은 세대의 하이볼 트렌드에 발맞춰 브루어리 스타트업인 부루구루와 협업해 만들었다. 작년 12월 출시 이후 1월 말까지 누적 판매량 150만개를 넘어섰다.
세븐브로이가 만든 곰표 맥주, 위글위글의 에코백 등 밸런타인데이 콜라보 상품, 디저트 전문 제조 중소기업인 참조은에스에프와의 크림모찌 등이 CU와 중소기업 간 협업으로 탄생한 대표 상품이다. 2017년부터 CU에 기획 상품을 공급하고 있는 참조은의 매출은 2018년 295억원에서 지난해 350억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BGF리테일의 이 같은 전략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렌드에 민감한 편의점의 특성상 다품종, 소량 생산이 중요한데 중소 식음료사가 이를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동반성장위원회가 주최한 ‘2022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유공 포상’에서 업계 최초로 단체 부문 국무총리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소 식음료 제조사의 등용문 역할하는 유일한 오프라인 채널CJ제일제당, 오뚜기 등 대형 제조사 20여 곳이 지배하는 식음료 제조 생태계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CU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스트코는 아예 분야별 상위 5개 사 안팎의 소수 제조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며 “이마트 등 대형마트를 비롯해 GS25조차 상품 공급의 안정성을 위해 대형 제조사와의 협업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오프라인 유통 채널 중에선 CU가 유일하게 중소 제조사들의 특급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일각에선 CU 등 편의점 채널을 통한 마케팅이 때론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식음료 제조사 관계자는 “편의점 가맹본사는 초도 물량만 구매해 준다”며 “편의점에서 대박을 터트렸다고 물량을 확 늘렸다간 자칫 재고 부담으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각사 온라인 구매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와 있는 할인 상품 대부분이 이들 중소 협업사의 재고 물량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중소 식음료 스타트업 관계자는 “편의점 판매는 지상파 방송의 맛집에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며 “갑자기 손님이 몰려들어서 매출이 몇 배 뛰기도 하지만, 넘쳐 나는 손님들을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면 오히려 매출이 방송 전보다 떨어지는 일도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편의점과의 협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미리 준비된 자’일수록 효과가 배가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HBAF 브랜드를 만드는 길림양행이 대표적이다. 아몬드 제조사로 오랜 공력을 쌓아 온 바프(옛 길림양행)는 2015년 GS25와 허니버터 아몬드를 출시하면서 지난해 매출 1162억원, 영업이익 102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명동에 자체 매장을 운영할 정도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