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금융사가 경쟁적으로 대출 지원에 나서면서 개발 사업이 우후죽순으로 불어났습니다. 개발 시장이 위기일 때 부동산금융이 시장 연착륙을 돕는 안전판이 돼야 합니다."
어려움에 봉착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수두룩합니다. 지난해 이후 기준 금리 인상과 자본시장의 유동성 위기 등으로 PF(프로젝트파이낸싱) 자금 조달이 여전히 팍팍합니다. 게다가 집값 하락, 미분양 증가로 주택 매수 심리는 얼어붙었습니다. 건설 및 개발업계에서는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부동산 금융사의 경쟁적 대출이 시장 상황을 더 악화한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2~3년 전만 해도 "부동산금융이 개발시장을 주도한다"며 금융 주도설이 힘을 얻는 듯했습니다. 시행이나 시공 분야보다 금융이 부동산 개발을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금융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 지원하기보다 대출 회수에 더 급급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업은 차갑고 냉정하다'는 말 그대로입니다.개발업계에서는 "맑은 날 우산 뿌리고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시행사에 돈을 빌려주거나 개발 프로젝트에 직간접 투자하고 있습니다. 시중은행 등 제1금융권은 물론 증권사 저축은행 캐피털 카드사 농업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도 부동산 시장의 '큰손'입니다.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도 부동산 대출 시장에 참가합니다. 이 중 자산운용사는 직접 개발사업에도 뛰어들었고, 증권사는 지분 출자 등으로 시행에 한 발을 담그기도 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몇 년간 호황을 구가하면서 증권사 자산운용사 신탁사 등이 건설사에 있는 개발 인력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부동산 금융이 개발 인력 블랙홀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개발 시장 파이가 계속 커지고 부동산 금융 시장도 덩달아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했습니다. 10년 주기설은 더 이상 근거 없는 구시대 이론으로 치부했습니다.
시행사는 토지비의 10%인 계약금을 스스로 마련하는 게 관행이었습니다. 사업 주체로 토지 계약이나 회사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돈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자본력이 약한 시행사에 계약금 대출을 경쟁적으로 했습니다. 계약금 대출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차원이 아닙니다. 브릿지론이나 본PF 대출 때 주관사를 맡아 각종 수수료를 챙기기 위한 포석입니다. 계약금 대출은 이른바 부동산 금융주관사를 맡기 위한 일종의 선점 전략인 셈입니다. 증권사 등이 무분별한 개발사업의 난립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제1금융권이나 보험사 등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순위 투자를 한 반면 시장을 낙관적으로 본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은 고금리의 후순위 투자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개발시장의 뒷단에서 사업을 지원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부동산 금융 종사자는 수수료 등으로 회사 수익 증대에 기여해 고액의 인센티브를 받았습니다. 개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여러 개 진행하면 그만큼 인센티브가 더 커졌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부동산 개발 생태계가 흔들리면서 부동산금융도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증권사 등은 지난해 말 선제적으로 구조조정도 실시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브릿지론 단계인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대출 연장을 빌미로 이자와 수수료 등 잇속을 챙겨 눈총을 사고 있습니다.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제2금융권이 부동산 대출 부실과 관련해 대손 충당을 쌓을 공산이 큽니다. 향후 개발 프로젝트가 공매 시장에 나오고 부실채권(NPL)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부동산금융의 영역 확대와 '수익 지상주의'가 개발업 침체의 골을 더 깊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개발 시장이 하루 빨리 안정을 찾으려면 부동산금융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합니다. 개발 사업 단계별로 PF 본래 취지에 맞게 사업성을 분석해 선별적인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여기서 개발과 금융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공통 분모를 찾아야 합니다. 냉정한 금융이 아니라 '따뜻한 금융'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