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돈 빌린 재개발 추진위…대법 "공사 취소돼도 빚 갚아라"

입력 2023-02-26 18:06
수정 2023-02-27 00:42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조건으로 건설사를 재개발 시공사로 선정하는 계약을 맺었다면 이 계약이 취소돼도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추진위가 공사 도급계약이 없던 일이 되더라도 금전 대여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었기 때문에 계약 무효와 상관없이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현대건설이 A지역재개발추진위원회 등을 상대로 “빌려간 돈을 갚으라”며 낸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지역재개발추진위는 2006년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해 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엔 현대건설이 추진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업 시행에 드는 자금을 빌려준다는 조건(소비대차약정)이 붙었다. 현대건설은 이 계약에 따라 추진위에 약 34억5000만원을 빌려줬다.

그런데 이 재개발 구역 토지를 보유한 B씨가 시공사 선정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B씨 등이 추진위를 상대로 “시공사 선정 결정을 무효로 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현대건설은 이 재개발 공사를 맡을 수 없게 됐다.

현대건설은 “시공사 선정이 무효가 됐으니 소비대차약정에 따라 대여금 중 25억원을 돌려달라”고 추진위에 요구했다. 추진위가 이 같은 요구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추진위 측은 “시공사 선정 결정이 무효가 됐기 때문에 공사 도급계약과 소비대차약정도 무효”라고 맞섰다.

현대건설은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선 재판부가 추진위 측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패소했다. 2심 재판부는 “법률행위 일부분이 무효일 때는 원칙적으로 법률행위 전부가 무효로 된다는 민법 137조에 따라 소비대차약정도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추진위가 2006년 공사 도급계약 체결 당시 ‘시공사 선정은 법적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관할 행정청의 안내를 받아 계약이 무효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현대건설로부터 돈을 빌렸고, 계약이 무효가 된 뒤에도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현대건설과 이 같은 금전 대여관계를 유지했다”고 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