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기, 설치보다 운영 관리에 신경 써야-충전기 보조금, 지급 대상과 항목 바꿔야
중소·중견기업들의 각축장이던 전기차 충전 서비스 시장에 대기업들이 빠르게 진출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가치사슬은 크게 완성차 판매 영역과 배터리 생산 및 재활용의 영역, 그리고 에너지원인 전기를 공급하고 충전하는 영역으로 구분된다.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전기차는 연간 10만대 이상이 판매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완성차 전체에서 전기차 비중은 여전히 낮은 만큼 정부와 지자체는 보급목표 달성을 위해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며 시장 확대를 독려하는 중이다. 정부 보조금은 전기차 분야의 초기 시장 확대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자 실제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판매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항목이다. 자동차 회사는 보조금을 통해 신차 가격을 낮춰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는 그만큼 비싼 전기차를 한층 저렴하게 구입하는 효과를 얻게 된다.
그런데 전기차 확대를 위한 정부 지원금이 필요한 또 다른 곳은 바로 충전기 설치 보조금이다. 충전기를 설치하는데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면 충전기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조건을 만족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전기차 보조금은 완성차 업계와 배터리 업계의 생태계로 유입돼 낙수효과를 일으키고 충전기 설치 보조금은 서비스 사업자에게 지급돼 충전기 제조 및 운영을 활성화하는 선순환적 효과를 창출한다.
덕분에 전기차의 인기는 급상승 중이다. 지난해 10월까지 국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34만7,000대를 기록해 올해 안에 40만대 돌파가 점쳐진다. 전기차 충전기 역시 약 13만3,000여 대가 전국에 설치되고 있다. 이 경우 등록 대수 대비 평균적으로 충전기 1기당 전기차 2.3대를 감당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수치 성과뿐 아니라 실질적 운영차원에서 정부 보조금이 지원 목적에 맞도록 사용되는지 면밀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정부 보조금이 투입된 차와 충전기의 공정 가치가 확보되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공정가치'란 시장에서 정상거래를 할 때 부여하는 가격으로, 가치측정의 결과는 객관적이지만 가치산정 과정에서 주관성이 개입되는 만큼 투명한 관리가 필요하다.
차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개인이나 법인의 자산으로 귀속되는 상품이고 중고 시장이 존재하기에 잔존가치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기차 시장 초기에는 출고가격이 4,000만원이고, 보조금 지원금이 2,000만원이라면 차 값은 보조금 만큼을 상쇄한 2,000만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는 출고가격에 가깝게 거래돼 보조금의 공정 가치는 해당 보조금과 동일한 수준의 공정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충전기는 복잡하다. 보조금의 경우에 따라 상이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환경부 보조금의 경우 보조금을 받는 주체와 자산의 소유 주체가 다르다. 신축 아파트를 예로 들면 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에 따라 주차대수의 5% 비율만큼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 설치해야 한다. 이렇게 설치된 충전기 자체는 해당 아파트의 자산이 된다. 하지만 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보조금은 충전사업자가 받는다. 이렇게 정부 보조금을 받아 설치된 충전기는 설치 사업자가 일정 기간 동안 운영권을 갖고 충전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충전기 설치에 필요한 비용이 100이라면 보조금의 지원범위는 전체 금액의 60~70% 정도로 제한돼 있다. 때문에 나머지 30~40%는 사업자의 투자 비용으로 다가온다. 결국 사업자 입장에서는 설치 투자가 늘어날수록 적자가 커지는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다.
이를 휴대폰 구매와 비교하면 통신 사업자에 가입하면서 신규, 기기변경, 번호이동 여부에 따라 단말기 보조금 또는 월정액 할인혜택을 받는 것과 비교해볼 수 있다. 개인은 단말 보조금 할인과 월정액의 할인 중 어느 것이 본인 입장에서 공정 가치가 높은 것인지 판단하게 되는데, 이때 보조금을 제외하고 나머지 비용을 부담했음에도 해당 스마트폰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어떤 소비자도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기차 충전기 자산과 운영의 주체가 분리되면서 실질적인 자산의 거래가 불가능하고 이로 인해 공정 가치를 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충전기 설치 및 운영 사업자들은 더 많은 보조금을 받아 단순히 충전기 설치를 늘리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선 충전 인프라 확장 외에 지금까지 설치한 충전기들의 효율적으로 관리와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 설치만 됐을 뿐 유지 보수 미비로 사용이 불가능한 충전기가 의외로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충전기 보조금 지급 기준을 충전기 추가에서 충전량에 따른 충전사업자 인센티브의 개념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 시점이라는 의미다.
실제 충전량을 기반으로 한 인센티브가 집행된다면 충전사업자는 전기차 충전의 활성화라는 본연의 목적성에 부합하기 위해 최초의 목적인 상면 확보 측면과 충전기 유지보수 측면 및 사용자 서비스 고도화 측면에서 지속적인 관리에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원활한 충전 서비스를 위해 기존 충전기 상태를 살피고, 오류가 있을 때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안정적인 충전기 관리체계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한, 충전 사업자는 더 많은 사용자가 선호하는 방법으로 충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와 소통을 통해 사용성 개선 등의 전사적인 노력을 할 것이며, 비슷한 맥락에서 사업자별 고객충성도 확대를 목적으로 보조금의 일부를 비용 할인 등의 프로모션 형태로 활용해 전반적인 충전 서비스 인프라 확대는 물론 충전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충전기 이용 활성화에 따른 보조금 지급은 사업자가 보다 나은 가격과 서비스로 공격적이고 효율적인 투자를 통해 충전 인프라를 확대하며 고객을 늘려가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업자 간 자연스럽고 생산적인 경쟁이 유발되고 그 결과 충전기 설치에 따른 보조금 확보에만 열을 올리는 지금의 형태를 벗어나 설치된 충전기의 운영 가동률을 올리기 위해 능동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형태가 장기적 관점에서 지금의 보조금 지급 방식보다 사용자와 시장에 보다 합리적인 양질의 환경을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물론 보조금을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실물 자산에 대한 간단명료한 방법 대비 운영사업과 서비스 등 무형자산에 대한 지원은 분명 어려운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전기차 이용에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고 환경을 위한 정책이라면 어려워도 도입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옳은 일이다. 그리고 기업은 어려운 이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가며 사업을 영위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 역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공정가치에 부합하는 합리적 보조금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형진(차지비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