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思春期)’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식물이 언 땅을 깨고 새싹을 틔우려고 진통을 겪듯이, 인간도 청춘을 꽃피우느라 애쓴다. 동서고금 문학작품에서 사춘기를 가장 요란하게 보낸 인물을 꼽자면 단연 ‘홀든 콜필드’일 것이다. 1951년 출간된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속 주인공 말이다.
열여섯의 콜필드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독자를 향해 말한다. “아마도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것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나의 엉망인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 우리 부모가 나를 낳기 전에 뭘 하느라 바빴는지 뭐 그런 데이비드 코퍼필드류의 쓰레기겠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시작부터 다짜고짜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자전적 소설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대차게 깐다.
소설은 기숙학교에서 쫓겨난 홀든이 3일간 뉴욕을 떠도는 내용이다. 그는 성적도 나쁘고 교사나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학교 밖에서 매춘부를 만나고 술집을 드나들며 방황하지만, 자신에게 무조건적 믿음과 애정을 보이는 여동생 피비에게 감동해 집으로 돌아간다. 홀든은 인간혐오론자처럼 투덜대지만, 사실은 피비를 비롯한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열망한다. 그가 싫어하는 건 어른들의 허위와 속물근성이다.
복잡미묘한 반항아 콜필드는 수많은 청춘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전 세계적으로 7000만 부 넘게 팔렸고, 꾸준한 인기에 국내에서는 민음사가 최근 새 번역으로 개정판을 냈다. 정영목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버전의 홀든은 좀 더 신랄하고 직설적이다. 말하자면, 요즘 말투다. 이전 번역본에서 홀든은 부모님에 대해 “끔찍할 정도로 과민한 분들”이라고 했지만, 정 교수는 이걸 “겁나 예민하다”고 번역했다.
살인자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있다. 비틀스 멤버인 존 레넌을 살해한 마크 채프먼은 도망가는 대신 범행 현장에서 이 책을 보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인 리 하비 오즈월드도 이 소설을 즐겨 읽었다.
작품을 둘러싼 여러 소동에도 샐린저는 ‘은둔의 작가’로 살았다. 소설이 성공하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싫다며 시골마을에 틀어박혔다. 외부와 연락도 끊었다. 영화감독 엘리아 카잔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찾아갔을 때 “홀든이 싫어할 것”이라며 거절한 일화는 유명하다.
제목은 책 속의 주인공 홀든이 꿈꾸는 자신의 모습이다. “나는 그 모든 어린 꼬마들이 호밀밭이나 그런 커다란 밭에서 어떤 놀이를 하는 모습을 계속 그려봐. (생략) 그런데 나는 어떤 미친 절벽 가장자리에 서 있어. 만일 꼬마들이 절벽을 넘어가려 하면 내가 모두 붙잡아야 해.”
그가 꿈꾸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진정한 어른, 선(善)과 정의라는 선(線)을 지키는 이상적인 사회 등으로 풀이된다. 혹은 문학 그 자체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올초 출간한 책 <문학이 필요한 시간>에서 “내가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마다 문학은 내 어깨를 버텨주고 내 이마를 짚어주고 내 손을 잡아주었다”고 썼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