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가 밸류에이션(평가가치) 높은 기업에 특히 까다로워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증시 침체 속 '개인투자자 손실 방지'에 초점을 맞추면서다. 이에 상장 일정을 미루고 일단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튼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27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신규 상장(스팩합병 포함) 기업 가운데 올해 들어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을 제외하고 거래소 심사 승인을 받은 업체는 10곳(모니터랩·씨유박스·큐라티스·금앙그린파워·벨로크·슈어소프트테크·에스바이오메딕스·M2N·진영·팸텍)으로 집계됐다.
모두 지난해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으며 승인까지 평균 5개월 넘게 걸렸다. 예비심사는 통상 영업일 기준 45일(약 2달)가량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심사가 다소 길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승인을 기다리는 곳도 33곳에 달한다. 이중 한 곳인 아벨리노는 작년 3월30일 청구서 접수 뒤 1년 가까이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거래소 심사가 까다로워진 건 오늘내일 일은 아니다. 기술평가 특례, 성장성 특례 등 상장 경로가 다양해지자 부실 기업 상장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 방식으로 들어오는 기업들 실적이 상장 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도 심사가 까다로워진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선 밸류에이션 높은 기업들에 대한 심사가 유독 깐깐해진 것으로 파악된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급하게 자금 조달에 나서는 기업보단 중장기적으로 유동성이 확보된 기업들을 좀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증시 침체 속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거래소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다.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을 빚은 기업을 승인했다가 상장 후 주가 급락에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개인투자자 기준으로 공모받은 후 손실 볼 리스크가 있는 기업은 웬만해서 승인을 잘 내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기업가치를 낮추고 상장한 중소형 공모주 중심으로 흥행 바람이 이어지는 점이 이같은 심사 기조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공개(IPO) N수생' 자람테크놀로지, 바이오인프라, 제이오 모두 기업가치를 낮춰 상장에 재도전한 결과 흥행에 성공했다.
자람테크놀로지는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 결과 공모가(2만2000원)가 희망밴드(1만6000~2만원) 최상단을 초과한 가격에 결정됐다. 이들 기업은 부진한 수요예측 결과에 지난해 상장 일정을 중단한 업체들이다. 모두 이번 상장 과정에서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을 많게는 37%까지 낮췄다. 구주 매출 비중과 유통 가능 물량도 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금 조달이 시급하지 않은 일부 기업들은 가치 올리기에 집중하면서 상장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발행사 차원에서 상장을 보류하고 가치를 올리기 위해 내실을 쌓으면서 준비하는 기업들도 여럿 보인다"고 귀띔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