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골프투어(KGT)가 주관하는 남자 프로골프 대회의 중계권이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중계권을 사겠다는 방송사들이 싸늘한 반응을 보이면서다. 5년간 중계료로 120여억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물리치고 공개입찰에 나선 게 화근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골프업계에서는 “KGT가 내심 300억원대를 기대하면서 공개입찰을 시도했으나 300억원은커녕 당초 확보했던 120여억원조차 받지 못할 상황”이라며 “남자 프로골프의 가치를 스스로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다”는 게 중론이다. JTBC, 중계권 입찰 전격 포기23일 업계에 따르면 KGT의 중계권 입찰에 참여한 방송사는 두 곳에 그쳤다. 1차 심사에 서류를 제출한 회사는 SBS미디어넷-이노션 컨소시엄과 스포티비(SPOTV)골프 채널을 보유한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가 전부였다. JTBC플러스(골프)와 MBC플러스, CJ ENM 등은 신청서조차 내지 않았다.
KGT 중계권 입찰 국면에서 가장 관심을 끈 회사는 JTBC플러스였다. 지난 5년간 18억원에 중계를 진행했던 JTBC플러스는 새로운 5년간 125억원을 내겠다며 KGT와 우선협상을 시도했다. 연간 25억원을 지급하겠다며 나름대로 ‘베팅’을 했지만 KGT는 JTBC플러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공개입찰을 결정했다. JTBC는 2004년부터 20년 동안 남자프로골프대회를 중계해 왔다.
골프중계업계 관계자는 “남자 골프대회는 여자 대회보다 시청률이 많이 낮아 중계료로 한 해에 25억원을 내버리면 광고 예상수익을 감안할 때 ‘손해 보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JTBC플러스가 경쟁사인 SBS미디어넷과 맞서기 위해 무리해서 가격을 제안한 것인데 결과론적으로 KGT가 아쉬운 결정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방송업계에서는 KGT가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에서 중계권 확보전쟁을 너무나 자기들 위주로 관전했다고 평가한다. 당시 JTBC는 5년 계약에 850억원(5년 750억원+발전기금 100억원)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결국 더 낮은 금액(600억원)을 써낸 SBS미디어넷이 중계권을 따냈지만 여자 골프에서 벌어졌던 일은 골프중계권의 가치가 만만치 않다는 의식을 심어줬다. KGT 내부에서 ‘300억원은 받아야겠다’는 소리가 나왔던 이유다.
현재 KGT는 긴급회의를 여는 등 크게 당혹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JTBC플러스가 손을 빼면서 SBS미디어넷과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가 ‘돈잔치’를 벌일 필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방송사의 관계자는 “골대에 골키퍼가 없어진 셈”이라고 촌평했다. 그는 “SBS미디어넷은 이미 KLPGA투어 중계권을 확보한 상황에서 이번 입찰에는 JTBC플러스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참여한 성격이 강하다”며 “LIV 시리즈 중계권을 확보한 에이클라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다. 굳이 비싼 값을 치르겠다는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KGT는 오는 27일 2차 심사(프레젠테이션)를 거친 뒤 28일 우선협상대상자를 통보한다는 계획이다. 남자 골프 인기가 땅에 떨어진 까닭남자 프로골프를 5년간 중계했던 JTBC가 입찰을 포기하겠다고 나선 건 인기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국내 프로골프는 남자가 주류인 세계 프로스포츠의 흐름과 역행하고 있다. ‘프로스포츠에서 여자 종목이 남자 종목의 인기를 뛰어넘는 건 국내 골프가 유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남녀 골프의 인기 온도차는 시청률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KLPGA투어의 평균 시청률은 0.467%로 남자들의 코리안투어가 기록한 0.133%를 압도했다. 코리안투어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0.212%)에도 0.08%포인트 가까이 뒤졌다. 지난해 시즌 중에 포털사이트에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 접속자 수는 대회마다 10배 가까이 차이 났다.
국내 골프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스타의 부재를 꼽는다. 코리안투어는 포인트 제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딱 한 번(최진호, 2016·2017년)을 제외하면 모두 대상 수상자가 달랐다. 여기에는 병역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서다. 한 코리안투어 선수는 “한창 실력이 물에 오르는 20대 중반 군입대를 고려해야 한다”며 “잠재력이 있는 많은 선수가 군대에 가서 감을 잃고 온다”고 주장했다.
골프팬들의 인식도 남자 골프와 거리를 멀게 한다. 매니지먼트업계 관계자는 “여자 대회를 찾는 갤러리들은 선수들을 ‘연예인’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며 “반대로 남자 대회를 찾는 갤러리는 ‘퍼포먼스’를 보러온 진성 골프팬인 경우가 많은데 그런 팬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