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외국 기업 등으로부터 벌어들인 법률서비스 무역 수입액이 6년 만에 감소했다. 금리 급등을 비롯한 인플레이션으로 인수합병(M&A)과 부동산 시장 등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대형거래가 크게 줄면서 국내 로펌들 역시 적잖은 타격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23일 한국은행이 집계한 ‘서비스무역세분류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법률서비스 무역 수입규모는 9억5770만달러로 전년보다 1% 감소했다. 2017년(7억9040만달러)부터 2021년(9억6740만달러)까지 5년 연속 이어졌던 증가세가 멈췄다.
법률서비스 무역 수입액은 국내 로펌과 법률사무소가 외국 기업이나 기관투자가 등을 상대로 거둔 수익을 의미한다. 외국 기업이나 기관의 한국 기업 M&A, 지분 투자, 부동산 거래를 자문하거나 이들이 한국 정부나 기업·투자자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때 대리해 벌어들인 수익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로펌들의 해외 영업 강화와 글로벌 금융시장 호황이 맞물리면서 법률서비스 무역 수입은 2018~2021년 매년 사상 최대기록을 새로 썼다. 코로나19 사태도 당초 우려와 달리 악재가 되지 못했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실물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추고 유동성 공급을 늘리자 기업들과 기관들은 앞다퉈 대규모 ‘실탄’을 조달해 투자에 뛰어들었다. 유동성 장세로 증시가 후끈 달아오르면서 기업들의 투자 유치와 기관들의 투자금 회수 모두 활발하게 이뤄졌다. 국내에서도 외국 기업과 기관들이 참여한 ‘빅딜’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주요 원자재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정책으로 금리까지 거듭 오르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조달비용 증가와 증시 침체에 따른 기업들의 몸값 하락에 기관들도 거래에 나서지 못한 채 상황을 관망했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이뤄진 경영권 이전 거래(사업부 및 영업양수도 포함) 규모는 47조663억원으로 2021년(약 66조원)보다 28% 감소했다. 조(兆) 단위 크로스보더(국경간 거래)가 △네이버의 미국 중고거래 패션 플랫폼 포쉬마크 인수 △에스디바이오센서의 미국 체외진단 기업 메리디안바이오사이언스 인수 △SK에코플랜트의 싱가포르 폐기물 처리기업 테스 인수 △브룩필드자산운용의 SK머티리얼즈에어플러스 산업가스 생산설비 인수 등 네 건에 그쳤을 정도로 ‘딜 가뭄’이 지속됐다. 2021년(10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부동산 투자시장은 더 냉랭하다. 각종 건설자재 가격이 뛰어오른 가운데 대형 금융회사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마저 자제하면서 침체기가 이어지고 있다. 전국 곳곳에선 공사가 연기되거나 잠정 중단된 현장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한 대형로펌 대표변호사는 “국내에서 대형 크로스보더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해외에서 직접 외국기업 등을 상대로 일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인플레이션이 세계적인 현상이다보니 모두 녹록지 않다”고 설명했다.
로펌업계에선 법률서비스 무역 수입규모가 올해도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한동안 이어질 기미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지난 21일(현지시간) S&P글로벌이 발표한 2월 미국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5로 지난해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PMI가 기준선인 50을 웃돌면 경기 확장국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비스업 PMI 개선은 물가 하락세를 더디게 해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기간을 늘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같은 날 애틀랜타연방은행이 집계한 1월 경직성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동기보다 6.3% 올랐다. 그동안 크게 하락해왔던 비경직성 CPI 상승률도 전달에 이어 6.4%를 기록했다. 미국 현지에선 중앙은행(Fed)이 다음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2%(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하며 9개월 연속 5%를 웃돌고 있다. 특히 전기·가스·수도 물가지수가 28.3% 오르면서 공공요금 인플레이션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5% 안팎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지난 21일 ‘2월 임시국회 업무현황’ 보고에서 “현재 기준금리(연 3.5%)가 긴축적인 수준”이라며 이날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동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물가 움직임을 고려하면 올해 안에 추가로 금리 인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