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를 개최하고 서민과 취약계층 보호대책을 발표했다. 공공요금, 에너지요금, 통신비용, 금융비용 등 4대 민생 비용 경감 조치다. 도로, 철도, 우편 등 중앙정부 관리 공공요금은 최대한 동결하기로 하고 지방자치단체에도 지하철, 시내버스 등 교통요금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이에 서울시 등이 버스와 지하철 요금 인상을 늦췄다. 지난 1년여 동안 민생의 기반인 적정 에너지요금에 대한 논란은 지속됐다. 1월 기준 가정용 전기, 가스, 난방비 등 연료비 지출이 지난 한 해 동안 약 32%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24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에 백가쟁명(百家爭鳴)식 해결 방안 제시가 기승을 부렸다. 전체 인구의 60%인 중산층을 모두 포함한 소비자 지원 확대 의견이 가장 많았다.
대부분 낡은 ‘경로 의존적(path dependant)’ 의견으로 큰 쓸모가 없다. 문제 진단과 분석, 그리고 대안 제시라는 과학적 전략 도출 원칙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에너지라는 재화의 투입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에너지는 그 자체가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다른 재화·서비스의 가치를 키우는 단기가격 비탄력적 중간투입재일 뿐이다. 먼 길을 빨리 쉽게 가고 무거운 짐을 쉽게 옮기는 에너지 서비스 창출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에너지 위기라도 국제 에너지(가스)시장 하향 조정 이외에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세계는 지구온난화, 질병통제, 정보격차, 금융투자 위주 산업지형 확대에 따른 형평성 부족에 시달려 왔다. 그래서 모든 문제 해결책은 복잡다기하다. 자본주의 한계를 극복할 투자와 규제의 조화가 필요하다. 정부와 민간을 망라한 기술-조직-사회 혁신도 필요하다. 특히 느리고, 비효율적인 기존 정부 정책 보완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부정적 효과 감축 대책이 긴요하다. 기초 연구와 같은 중·장기적 ‘긍정적’ 외부 영향(externality)은 확대하되, 시장 조작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줄여야 한다. 투입-산출 효율검증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이런 점에서 ‘공공선(Public Good)’ 관념 도입을 통한 새로운 정책이 시대적 요구일 수 있다. 공공선이란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 존중을 통해 다수의 삶의 질을 높이는 ‘윤리적인 시장경제’ 개념이다. 따라서 재화와 서비스의 단기 투입 수준을 따지기보다 집단지성을 통한 중·장기적 공동체 구성 방법론과 사회적 후생 ‘거버넌스’ 조성에 치중한다. 인간은 공존적(共存的) 존재이기 때문에 공익보다 사익만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사회질서 및 공동체 연대의식 붕괴와 함께 결국은 현존 문명체계 훼손으로 이어진다. 지금 바로 활용 가능한 공공선의 평가 논리와 실행 수단도 많다. 기업의 사회적책임(CSR) 논리가 대표적이다. 에너지 절약과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 전략도 그러하다.
공공선을 가치판단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정책추진 체계는 ‘단기’ 에너지 문제(특히 요금 논란) 해결에 긴요하다. 소비자 지원 몫을 단기 공급 확충으로 돌리고, 기업에는 사회적책임 경영 차원에서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정부가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도 ‘대가 없는’ 공익 차원 에너지 절약을 떳떳이 당부할 수 있다. 요즈음 우리 에너지시장은 시장-자본주의 왜곡의 극단이며 이기주의적 담합의 전형이라는 걱정이 많다. 공공선에 대한 정부, 기업, 학계의 진솔한 관심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