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됐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면서 발생한 인명 피해는 양국 군인 사망자가 20만 명,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자는 7000명에 달한다. 우크라이나는 에너지 시설 절반이 파괴됐고, 국민의 33%(1340만 명)가 난민 신세가 됐다. 에너지와 식량 가격 폭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번 전쟁으로 올해 말까지 세계 경제 손실이 2조8000억달러(약 3627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희생자만 늘어가는데도 확전으로 치닫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게다가 이 전쟁은 신냉전 대결 구도를 심화하면서 국제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제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해 러시아의 ‘정복 전쟁 실패’를 외치며 우크라이나에 4억6000만달러(약 5960억원) 규모의 군사 원조 보따리를 풀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핵 통제 조약 참여 중단을 선언했고, 왕이 중국 정치국 위원은 러시아를 방문하고, 시진핑 주석의 방러설도 나온다.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아 대미 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는 속셈일 것이다. CNN의 표현대로 지정학적 단층선이 극명하게 갈라지고 있다.
북한도 격화하는 신냉전 구도에 올라타 중·러와 결속을 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사일 도발을 부쩍 늘리며 모험을 키우는 것도 중·러가 뒷배가 돼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러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한 유엔의 제재를 번번이 막아주고 있다. 김여정의 ‘태평양 사격장 활용’ 발언도 평소 같으면 허풍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이런 신냉전 구도 속에서는 빈말로 여길 수 없다. 북한은 이런 국제 정세를 십분 활용해 핵·미사일 도발 수위를 바짝 끌어올려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고 할 것이다. 한반도가 신냉전 대결 구도의 꼭짓점이 되면서 지정학적 위험은 한층 고조되는 양상이다.
한국의 선택지는 명백하다. 한·미 동맹과 자유진영 결속을 더 공고히 해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억지력을 키워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철저하게 국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제 질서의 냉엄한 현실도 돌아봐야 한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미국·영국·러시아의 종용으로 주권과 영토권 보장 대가로 수천 기의 핵탄두를 러시아에 넘겼다. 그러나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 미국과 영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북한 핵에 대한 자강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다면 그 결과는 수많은 국민의 피로 돌아온다는 게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