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이라는 만선의 꿈을 싣고 먼 바다를 향해 항구를 떠났던 바이오텍(소규모 바이오 신약개발 기업)들이 금리인상이라는 높은 파고 속에 휘말렸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만 남기고 무거운 짐들은 바다에 던져 몸을 가볍게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한 기준금리 인상의 파고는 거칠어 지더니 어느 새 연 3.5%까지 올랐습니다. 출항 때 드높았던 만선의 기백은 많이 쪼그라들어 이제는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더 큽니다.
많은 바이오텍들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시장에 진입한 2019~2021년은 저금리 환경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업계획서는 낮은 금리를 배경으로 작성됐습니다. 그러다보니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모든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행은 2021년 8월 미국보다 5개월 늦게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해서 이후 지속적으로 0.25%씩 인상했고 2022년 7월, 10월에는 0.5%의 빅스텝 금리인상을 단행합니다. 0.5%에서 상승하기 시작한 기준금리는 1년 6개월간 쉼없이 달려 현재 3.5%까지 올라왔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금리인상이 바이오텍 기업가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모든 경영환경과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요소는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어 최종적으로 주가에 반영됩니다. 코스닥 제약지수가 급격한 물가상승에 따른 금리인상 불확실성을 반영하면서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이 2021년 9월인데 당시 제약지수는 1만3000포인트였습니다. 이 시점은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하기 정확히 6개월 전으로 시장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선 반영했던 것입니다. 이후 미국 금리인상 행보가 빅스텝을 넘어 이름도 생소한 자이언트스텝(0.75%)까지 보폭을 넓히자 주가는 한차례 더 충격을 받게 됩니다. 금리인상이 지속되고 그 폭이 커질 때마다 제약지수 하락은 이어져 2022년 10월 고점대비 50% 하락한 6444포인트에서 바닥을 확인하게 됩니다. 2019년 바이오 주식이 상승하기 전 수준으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여기서 2개의 숫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준금리 인상 3%와 바이오텍 주가 50% 하락. 금리인상이 바이오텍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금리인상 3%에 바이오텍 주가가 50%씩이나 하락한 것이 정상적인가? 좀 과한 것은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물가상승에 따른 금리상승은 바이오텍 기업가치에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바이오텍은 돈을 빌려 신약개발에 집중하는 특성상 금리가 상승하면 차입비용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자율이 상승하면 현금고갈 속도가 빨라져 혁신적인 기초연구에 충분히 투자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몇 년간 쓸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해 차질없이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나름 재무적으로 튼튼한 바이오텍이라 하더라도 금리인상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바이오텍의 미래 편향적 매출구조와 현금흐름 할인율이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바이오텍은 당장 몇 년간은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 기술로 신약개발에 성공하여 목표한 치료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보한다는 가정하에 가치산정이 이루어집니다. 즉, 기업가치가 향후 몇 년간 벌어들이는 이익 보다는 그 이후에 발생할 부분이 훨씬 크다고 가정하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성장기업이 이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금리가 상승하게 되면 미래에 벌어들이는 이익인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할인율 즉, 투자자들의 요구수익율도 동반해서 상승하게 됩니다.
바이오텍들은 미래 매출 추정이 제각기 다르기는 하나 할인율이 1% 상승할 때마다 대략 15% 전후의 기업가치 감소효과가 나타납니다. 또한 매출의 미래편향이 크면 클수록 할인율 1% 상승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3%의 기준금리 인상과 코스닥제약지수 50% 하락폭은 상당부분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하락이면 금리불확실성을 충분히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6%까지 올린다면 한 차례 더 충격은 있겠지만 말 그대로 소수 의견입니다. 기준금리 인상 돌입 6개월 전부터 제약지수가 급락한 것처럼, 반대로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기 6개월 전에 제약지수는 선행해 본격적인 상승흐름을 탈 것으로 전망합니다. 늦어도 2024년 초를 기준금리 인하시점으로 본다면 올 3분기부터는 본격적인 바이오 상승흐름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높은 파고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걸러내는 잣대가 되어 자본시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긍정적 요인도 있습니다. 기술력을 키우고 시장의 신뢰를 얻어 격랑을 이겨낸 바이오텍들은 다시금 잦아진 파고(낮아진 금리) 속에서 생존자의 권리인 투망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만선의 깃발을 올리고 당당히 항구로 돌아오는 바이오텍들의 뱃머리를 미리 그려 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해진 임플바이오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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