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23일 10:1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의 숨은 '키맨'이 있다. 한해 전 SM엔터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입사한 장철혁 이사다. SM엔터와 하이브, 카카오 등 주요 이해관계자 사이에선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SM엔터에 입사한 뒤 모든 게 달라졌다. 주주 행동주의에 나서 회사를 압박했던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 측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면서 이수만 창업자에 대한 현 이사회의 반란을 이끌어낸 주역으로도 평가된다. 이성수·탁영준 공동 대표이사가 백의종군 의사를 밝히면서 장 이사가 차기 SM엔터 대표로 부상하고 있다.차기 SM엔터 대표 유력 인물23일 업계에 따르면 SM엔터 경영진 및 이사회는 차기 대표이사로 장철혁 CFO를 검토하고 있다. 3월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이성수·탁영준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고 용퇴해 본업인 프로듀서로 돌아가고, 장 CFO가 차기 대표로 선임될 가능성이 유력시된다. 앞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처조카인 이성수 대표가 내달 정기 주주총회 이후 사임할 뜻을 밝히면서 그 후임에 관심이 쏠려온 바 있다.
SM엔터 경영진이 22일 내놓은 사내이사 후보에도 이름이 올랐다. SM엔터는 장 CFO와 김지원 마케팅센터장, 최정민 글로벌비즈니스센터장을 사내이사로 제안하면서 "과거 체제에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기존 이사진은 모두 연임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장 CFO가 차기 대표로 올라선다면 SM엔터 입성 1년 만 '고속 승진'이다. 정 CFO는 SM엔터가 혼란을 겪기 시작했던 지난해 2월 말 입사했다. 얼라인파트너스가 지배구조 개선 캠페인 대상으로 점찍은 이후 창업자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를 몰아내고 현재 하이브와 SM엔터 간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분쟁으로 격화하기까지 모든 과정엔 그가 있었다. 얼라인파트너스의 소통 파트너인 장 CFO가 현 경영진을 설득해 '이수만 없는 SM' 반란을 이끌어냈다는 게 관계자들 얘기다.
백의종군을 선언한 이성수 대표를 대신해 공식 입장 발표 등 전면에도 나서기 시작했다. 20일~21일 연이틀 공식 유튜브에 출연해 'SM이 하이브의 적대적 인수를 반대하는 이유'와 'SM 3.0: IP 수익화 전략' 등 회사 방향을 직접 브리핑했다. 사실상 회사를 쥐락펴락하는 '키맨'으로 성장했다는 평이 나온다. 바디프랜드·스킨푸드 거친 재무통 장철혁 CFO는 1974년생으로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했다. 1997년 회계사 자격을 얻은 뒤 그 해부터 2003년까지 삼정KPMG에서 NPL(부실채권) 및 감사 업무를 맡고 2003년부터 11년간은 삼일회계본부에 소속해 Deal 2본부 이사로 M&A 실사 및 매각·매수 자문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2015년부터는 기업으로 옮겨가 1~2년꼴로 여러 업종을 거쳤다. 시작은 건설업체였다. 대부건설 민자운영팀장으로 기업 승계와 관련한 업무를 맡았다. 이후 바디프랜드에 부장 직급으로 건너가 최고경영자(CEO)가 추진하는 렌탈 및 미국 진출 등의 신사업을 도맡아 진행했다. 재무라인에도 있으면서 파이낸싱과 해외딜러망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다. 2019년 스킨푸드를 시작으로 CFO 이력도 시작됐다. 스킨푸드는 직전 해까지 회생절차를 밟았는데 2019년 사모펀드인 파인트리파트너스에 매각되면서 재무개선 및 재도약을 위해 장 CFO를 영입했다. 2년 뒤 2021년엔 동아탱커 CFO를 지냈다.
장 CFO의 지인들은 그를 "전형적인 CFO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워커홀릭' '원칙주의자'로도 요약된다. "성실하고 끈기가 있다"부터 "전략통이라 호칭을 붙이기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는 평도 있었다.얼라인 이창환의 트로이 목마?SM엔터는 지난 10년간 CFO를 별도로 두지 않았다. 2012년 이종인 전 CFO가 마지막이었다. 남궁철 상무가 사실상 CFO 역할로 재무를 책임져왔지만 공식 직함은 CFO실에 직속해 있는 파이낸스센터장이었다. 10년 만의 선임인 만큼 SM엔터가 장 CFO에 부여한 상징성도 크게 인식됐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의 지배구조 개선 캠페인 영향이 컸다. 영입부터 얼라인이 배경이 됐고 부여받은 미션도 얼라인과 얽히게 됐다. 장 CFO는 얼라인과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면서 이사회의 변화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장철혁 CFO가 사실상 얼라인 이창환 대표의 '트로이 목마'가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내비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장철혁 이사가 이성수 대표 등 경영진을 설득하면서 다들 이수만 없는 SM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SM엔터가 지난 1월 20일 발표한 얼라인와의 12개 합의사항 등의 실무를 담당한 게 장 CFO다. 당시 합의사항엔 △본사 및 자회사가 보유한, 본업과 무관한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핵심사업의 성장을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 △향후 3년 동안 별도 당기순이익의 최소 20%를 주주에게 환원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설 연휴 직전 이수만 없는 SM 3.0 계획이 발표된 이후 벌어진 SM 경영권 분쟁을 내부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게 장 CFO다. 그는 경영권 방어의 일환으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달 15일 회계법인들에 SM스튜디오스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디어유(지분 31.98%), SM C&C(29.56%), 키이스트(28.38%) 등 세 곳의 주식 매각 자문을 위한 용역 제안서 제출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직접 발송했다. 제안서를 20일 오후 6시까지 제출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이 앞서 16일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자 비난 여론을 의식해 말을 바꿨다. 비핵심 계열사를 매각해 본업인 음악 사업에 집중한다는 게 명분이었지만 매각 대상에 팬 소통 플랫폼 디어유가 포함됐다는 점이 비판 여론이 들끊자 매각 대상에서 디어유만 은근슬쩍 제외했다.
이성수 대표의 유튜브 폭로전이 시작된 이후 장 CFO도 유튜브를 통해 마이크를 직접 잡았다. 그는 자회사 매각을 직접 추진한 지 엿새만인 21일엔 유튜브로 2차 IP(지식재산권) 사업 확대 계획을 밝혔다. "MD(굿즈상품), IP 라이선싱, 팬 플랫폼, 영상 콘텐츠 등 2차 IP 사업 확대를 통해 매출을 극대화할 것"이라 밝혔다. 불과 일주일 만 상반된 전략을 펴면서 행보가 이중적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