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봉산업을 강타한 ‘꿀벌 집단 실종 사건’이 국내에서 처음 보고된 건 지난해 초다. 월동한 벌통에서 꿀벌이 모두 사라지는 ‘꿀벌군집붕괴현상(CCD)’ 추정 사건이 속출한 것이다. 그 후 1년여. 남쪽 지역에 주로 집중됐던 꿀벌 집단 실종이 강원도에서도 확인되는 등 피해 지역이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100억 마리가 사라지고 양봉산업이 붕괴할 수 있다”는 공포가 업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원인 놓고 CCD vs 월동 폐사 격돌‘꿀벌 100억 마리 실종’이 현실화하면 사태는 과일, 채소류는 물론 우유 등 유제품 가격이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으로 곧장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농작물의 70~80%가 꿀벌의 활동으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20일 양봉업계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꿀벌 한 통 가격은 40만~50만원으로 치솟았다. 지난해만 해도 한 통에 20만원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두 배 이상 오른 가격이다. 하지만 이 가격을 준다고 해도 꿀벌을 구하기 쉽지 않다. 살아있는 꿀벌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벌 깨우기’를 끝낸 농가가 늘어나면서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춘천시 양봉협회 소속 농가에서만 꿀벌 5600군(통) 중 3811군이 사라졌다. 경기도에서도 지난 1월 꿀벌 사육군수 25만6448군 중 8만8300군이 피해를 입었다. 충청북도 역시 1301군이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양봉 농가에서는 “지난 1년 사이에 벌의 85~90% 이상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꿀벌 실종 원인을 놓고는 농가와 정부 측 진단이 엇갈린다. 양봉 농가는 농약으로 인한 CCD라고 주장한다. 2022년 초 키우던 꿀벌 중 80% 이상이 월동 전에 사라졌고, 겨우내 10~15%가 더 없어졌다는 설명이다. 신창윤 양봉관리사협회 회장은 “소, 닭, 돼지 등이 80% 죽었으면 정부가 가만히 있었겠냐”며 “실질적인 피해 조사부터 당장 진행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양봉 농가는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꿀벌 실종이 CCD가 아니라 월동 폐사라고 판단하고 있다. 원래 꿀벌이 월동을 하면 지역에 따라 10~30% 정도 폐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보고된 CCD는 일벌들만 사라지고 여왕벌과 애벌레 등은 남아 있는데 한국에서는 여왕벌까지 모두 사라지는 점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차원 컨트롤타워 절실”CCD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가장 큰 요인으로 거론되는 것은 꿀벌 응애의 급속한 확산이다. 꿀벌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먹고 사는 응애는 ‘날개 변형 바이러스’ 등 병을 옮겨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 기후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겨울철 온도가 높아지면 봄인 줄 알고 벌들이 깨어났다가 다시 추워진 날씨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얼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꿀벌의 실종이 양봉산업의 괴멸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화분 매개자인 꿀벌이 줄어들면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멸종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곤충, 초식동물, 인간에게까지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2014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정철의 안동대 교수는 “꿀벌은 꿀벌의 먹이(식물학), 꿀벌의 생태(곤충학), 부산물인 꿀(식품학) 등 다양한 학문이 복잡하게 얽혀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며 “농식품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함께하는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