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는 ‘기회의 땅’으로 불려왔다. 금광을 찾아 나선 19세기 개척민에게 그랬고, 실리콘밸리의 자금을 챙기려는 정보기술(IT) 인재들에게도 그랬다. 서부로 모험을 떠나온 사람 가운데는 사진가 김인태(76)도 있었다. 그는 미국 서부의 풍경에서 ‘금광’을 찾고자 했다.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과 유타주의 모뉴먼트밸리 등 장엄한 풍경이 곳곳에 널린 이곳은 전 세계 풍경 사진가들의 ‘성지’로 꼽힌다.
김인태는 1980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이곳에 왔다. 광활한 대자연을 마음껏 렌즈에 담는 건 사진을 전공한 그의 오랜 꿈이었다. 로스앤젤레스(LA) 사진 현상소에 근무하며 생업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등 수십 년간 갖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는 마침내 미국 사진전문잡지 ‘B&W’의 표지(2004년 6월호)를 장식하는 등 현지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됐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인사1010에서 열리고 있는 ‘선율’은 15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김 작가의 개인전이다. 캘리포니아, 네바다, 오클라호마, 아이다호 등 자연 풍경을 찍은 50여 점의 사진이 벽에 걸렸다. 대부분이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 등 남서부 사암지대의 사진이다. 브라이스캐니언, 데스밸리, 앤틸로프, 애스펀 등 독특한 풍경으로 유명한 장소에서 빛과 그림자가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풍경을 그대로 사진으로 옮겼다.
지형 전체를 한눈에 조망해 장엄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작품보다 특이한 바위 등 세부적인 지형을 잡아낸 것들이 더 많은 게 특징이다. 작가는 “전체의 모습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만을 찾아내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다알리아와 튤립, 목련 등 꽃의 시들어가는 부분을 확대 촬영한 식물 사진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전시는 오는 3월 14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