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기사들이 건설사로부터 받는 일종의 뒷돈인 월례비가 ‘사실상 임금’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부가 월례비를 근절해야 할 ‘불법 관행’으로 보고 개선에 나선 상황에서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건설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고등법원은 지난 16일 D건설이 타워크레인 기사 16명을 상대로 “6억5400만원가량의 월례비를 돌려달라”고 제기한 부당이득반환 소송에서 “월례비는 묵시적 계약”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D건설은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광주의 6개 건설 현장에서 원청인 시공사들로부터 업무를 도급받아 수행했다. 시공사들은 기사들이 소속된 타워크레인 회사와 임대차 계약을 맺었지만, 기사들은 자신이 소속된 회사가 아니라 D건설에 시간외 근무수당 명목으로 월 300만원을 본인, 가족, 지인 명의 계좌로 챙겼다. ‘업계 관행’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지난달 19일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건설현장 불법행위 피해사례 실태조사’에서도 총 2070건의 불법행위 중 ‘타워크레인 월례비’가 1215건(58.7%)에 이를 정도로 횡행하고 있다.
D건설이 “계약 관계 없이 지급된 월례비는 부당이득이니 반환하라”며 소송을 제기하자 기사들은 “사실상 D건설의 지휘를 받고 일했기 때문에 임금”이라는 취지로 맞섰다. 이에 1심 광주지법은 “기사들은 D건설이 아니라 크레인 회사와 고용관계이므로 D건설이 지급한 월례비가 임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광주고법은 1심과 달리 월례비가 ‘사실상 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월례비는 수십 년간 지속된 관행”이라며 “기사들이 ‘월례비가 없으면 작업할 이유가 없다’고 증언한 점 등을 보면 월례비를 두고 ‘묵시적 계약’이 성립했다”고 판단했다.
건설사들은 “상납하듯 월례비를 뜯겼는데도 이 같은 불법적인 관행을 법원이 외면했다”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뒤집히는 판단에 건설사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