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편찬하는 최초의 국어사전입니다. 30만여 개의 올림말 집필 작업을 끝냈고, 북측과 협의해야 할 1만7000장 분량의 ‘남측 가제본 사전 10권’을 처음으로 제작했습니다.”
지난 1월 공동회의 재개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언론을 통해 북측에 보낸 민현식 겨레말큰사전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69·사진)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17일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손에는 오지 않는 답신을 기다리며 실용적으로 편찬한 <겨레말작은사전>이 들려 있었다. 편지에는 ‘하나 된 겨레말을 준비하기 위해 회의를 재개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그가 요즘 온 힘을 쏟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70여 년간 분단으로 깊어진 남북의 언어 이질화를 좁히는 일이다. 2005년부터 시작해 한국과 북한의 언어학자가 평양, 중국 등지를 오가며 25차례 공동회의를 열어 협의를 거듭했다. 민 이사장은 “겨레말큰사전은 단순히 사전학적 가치가 아니라 통일 전에, 통일 과정에서도, 통일 후에도 한겨레가 유용하게 사용할 실용적인 사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선 ‘일개미’를 ‘로동개미’라고 하지만 양측은 어느 하나로 정하지 않고 복수 표준화해 언중이 택하도록 했다. 한국에선 외래어를 많이 사용해 협의하기 어렵지 않았냐고 묻자 민 이사장은 “북한말 ‘얼음보숭이’는 소멸하는 단어인데 요즘은 북한도 아이스크림 또는 에스키모라고 한다”고 답했다. 그는 외래어와 정보기술(IT) 용어는 남북한이 비슷하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어 올해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에 예산을 지원한다고 의결했다. 하지만 남북 간 긴장 상태가 높아지면서 2015년 다롄회의를 마지막으로 북측과 대면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회는 공동회의를 재개하기 위해 문서를 송수신하며 <겨레말큰사전> 작업을 해왔다. 유튜브 채널 ‘겨레말 TV’ 개설 등 사전 관련 홍보 활동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남북한 말을 알기 쉽게 비교한 앱 ‘남녘말, 북녘말’은 일선 학교 교사들도 교육용으로 이용하는데 학생들의 호응이 높다고 한다.
민 이사장은 국어교사로 시작해 국립국어원장까지 지낸 국어학계 원로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로, 2022년 겨레말큰사전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가 한글 연구에 뜻을 둔 것은 고등학교 때다. 김영랑, 정지용 등 문인을 다수 배출한 휘문고교 시절 우리 말글을 강조한 국어 선생님 영향을 받았다. ‘인류 문명을 이루는 열쇠는 신비한 말과 글의 세계’라는 생각으로 언어 연구와 교육을 위해 서울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인터뷰 내내 사업 얘기만 나눠 머릿속에 우리말 생각이 가득 차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우리 사회의 갈등 문제로 화제를 옮기며 “말의 격이 올라야 국격이 오른다”고 했다.
민 이사장은 <전자겨레말큰사전> 설계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올해 목표다. 그는 겨레말큰사전이 남북에 흩어진 토박이 말을 수집해 남북 최고의 사전이 되도록 하는 게 생에 최대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전민서 기자 hayonwy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