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해 감산 강도를 높이거나 오래 이어가지 않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지난해 10월 ‘유례 없는 수준’의 감산을 선언하고 4개월 여 만의 전략 변화다. 강도 높은 감산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 우려를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15일 반도체 감산 계획에 대해 “엄청난 감산은 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대 도원학술원 개원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 부회장은 “공급이 초과할 때는 ‘슬로우 다운’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너무 감산하는 것도 경쟁력 차원에서는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수요 공급 비즈니스 모델이 좀 단순해서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며 “그 부분에 대해 다양하게 극복할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부터 수익성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웨이퍼 투입량을 줄여왔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재고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생산을 줄인 것이다. SK하이닉스가 감산을 선언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3년 만이다. 올해 설비 투자 계획도 지난해보다 50% 이상 줄였다.
박 부회장은 미국 지원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투자가 제한되는 이른바 ‘가드레일’ 조항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계속 협력하고 있다”며 “아시아 집중을 완화하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지난해 8월 발효된 반도체지원법은 ‘미국 정부로부터 투자 관련 세액공제나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 공장에 첨단 시설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박 부회장은 또 “다운 턴(하강 국면)에서 투자 여력 등을 고려해 동맹국과 팹(공장)을 건설하는 등의 옵션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은 상수 같지 않아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