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 넘어간 '청담동 금싸라기 땅'…중순위 대주 판단 '결정적'

입력 2023-02-15 16:58
이 기사는 02월 15일 16:5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서울 청담동 '금싸라기 땅'이 공매로 넘어가며 강남 한복판에서 착공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나마 사업성이 남아 있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에서는 중순위 대주단의 판단에 따라 공매로 넘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PF 시장과 부동산 업황 개선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에 힘이 실리며 공매로 넘어가는 사업장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하이엔드 주거시설 '루시아 청담 514 더 테라스' PF 대주단은 이날 차주인 루시아홀딩스의 기한이익상실(EOD) 해제 요구에 보류 의견을 전달했다. EOD 해제를 위해 루시아가 새로 제시하는 계획안을 검토한 뒤 조만간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루시아 측이 EOD 상태 해제를 요구하며 지난 13일 대주단을 소집한 데 따른 의견이다. 루시아가 차입 금리 상향 등 대주단 모두를 만족시킬 조건을 제시해 공매를 막을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쉽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주 가운데 한 곳이라도 반대 의견을 내면 EOD 해제를 진행하지 못하는 계약 구조여서다.

이미 사업 부지(서울 강남구 청담동 49-8번지)와 사업인허가권은 공매 공고를 마쳤다. 1차 공매는 오는 23일부터 시작되며 가격은 2263억원이다. 공매는 유찰 때마다 10%씩 낮아진다. 4차 공매까지 이어지면 부지의 공매 가격은 1650억원으로 떨어진다.

업계는 공매가 여러 차례 유찰을 거듭할 것으로 보고 있다. 1500억원 이하로 떨어지면 후순위도 손실을 내는 구조다. 950억원을 빌려준 선순위 대주인 메리츠화재는 여유로운 상황이다. 중순위 400억원도 원금 회수를 장담하긴 어렵다. 후순위인 SK증권은 손실을 낼 가능성이 크다. 한 관계자는 "공매에 가더라도 회수하려면 상당 시일이 소요된다"며 "감정가액이 높게 책정돼 있어 유찰이 여러 번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안은 중순위 대주단이 지난해 12월20일 EOD를 통보하며 공매까지 이어졌다. 만기 연장을 해주더라도 본 PF 전환 등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많을 것으로 판단한 일부 중순위 대주가 "지금이라도 팔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며 자금 회수를 요구한 것이다.

PF 업계에서 중순위 대주단의 판단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들이 자금 회수 마지노선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선순위와 후순위 대주는 입장이 명확하다. 선순위는 공매로 넘겨도 이익을 내지 못할 뿐, 손실을 내지 않아 다른 대주 의견을 따르는 입장이다. 후순위는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공매에 반대한다. 반면 중순위는 공매로 넘겼을 때 손실을 낼 수도 있어 고심이 커지는 위치다.

중순위 대주가 고심 끝에 공매로 넘겼다는 것은 향후 PF와 부동산 업황이 좋아지지 않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처분해야 투자금액을 건질 수 있다는 평가다. 공사비 상승, 미분양 속출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고 있다. 공매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부실채권 물건이 더 나오기 전에 처분해야 자금을 돌릴 수 있다는 의견도 공매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빨리 털어내야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진단이 더욱 시장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주들이 한꺼번에 공매로 넘기게 되면 시장에 나오는 물량이 늘어나며 토지 가격 하락이 이어질 수 있다. 토지 가격 하락은 전체 PF 사업장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대주로 얽혀있는 금융기관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다.

한 PF 업계 관계자는 "수도권처럼 아직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장은 중순위가 적시성을 고려해 EOD를 선언하는 것"이라며 "사업장마다 다르지만, 지방 사업장은 어려움이 많아 선순위도 빨리 빠져나오려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