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운용사 엘리엇과 메이슨캐피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1조2000억원대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의 변론 절차가 최근 마무리됐다. 이르면 올해 안에 정부의 손해배상 여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최근 엘리엇·메이슨과 한국 정부의 ISDS 변론 절차를 종료하고 판정문 작성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대규모 중재사건의 판정문이 완성되기까지 최소 수개월이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이르면 올 하반기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엘리엇과 메이슨은 2015년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을 추진할 때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행사하도록 해 합병을 성사시킴으로써 손해를 봤다면서 2018년 각각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은 7억7000만달러(약 1조원), 메이슨 2억달러(약 2600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가 불리한 상황을 딛고 판정부를 상대로 얼마나 설득력 있는 방어논리를 펼쳤느냐가 손해배상 여부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의 판결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모두 징역 2년6개월)의 유죄가 확정되면서, 정부가 국민연금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로선 사실상 부당 개입을 인정한 채 법리 다툼을 해야했던 셈이다.
정부의 개입으로 엘리엇·메이슨이 손해를 봤다는 것을 입증하기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정부가 선방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 ‘국민연금의 찬성표 행사→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성사→엘리엇·메이슨 손실’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가 모두 입증돼야 엘리엇·메이슨이 손해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정부의 압력과 무관하게 국민연금이 찬성 의견을 낼 계획이었거나, 국민연금이 반대했더라도 합병이 성사될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내용 등을 입증하면 엘리엇·메이슨의 논리에 금이 갈수도 있다는 평가다.
삼성물산 소액 주주들도 최근 이 같은 인과관계 입증 부족으로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정재희 부장판사)는 지난달 삼성물산 주주 72명이 “정부의 위법 행위로 합병이 성사돼 손해를 봤다”며 국가에 약 9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국민연금 투자위원회는 주식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합병이 무산됐을 때 기금운용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독자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며 “문 전 장관 등이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인정하나 이 같은 직권남용 행위와 주주들의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이 2015년 7월 17일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위해 열었던 임시 주주총회에선 총 9202만3660주가 찬성 의견을 냈다. 총 주식의 58.91%로 해당 안건의 특별결의 요건(발행주식 수의 56.48%)보다 2.43%포인트 더 많았다. 반대표를 던진 주식은 총 주식의 25.82%였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들고있던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은 이보다 일주일 앞선 7월 10일 열린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됐다. 다음날인 7월 11일 찬성표를 던진다는 결정이 시장에 알려졌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