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운영 자회사인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집중 공략 대상 중 하나다. 근무 직원만 3만8000여 명에 달하는 데다 회사 규모도 빠르게 성장해 세를 불리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게 내부 판단이었다. 하지만 2021년 설립된 노조는 2년여 동안 조합원 200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 운동 전문가가 취업해 조합원을 모집하고 작년 쿠팡 본사를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물류센터에서 만난 김모씨(23)는 “노조 활동을 할 시간에 차라리 배달 앱을 통해 돈을 벌 것”이라며 “내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등 주류의 퇴장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가장 큰 고민은 급격하게 줄어드는 조합원 수다. 정년퇴직하는 조합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20~30대 신규 조합원 유입은 갈수록 더뎌지는 까닭이다. 포스코지회의 민주노총 금속노조 탈퇴 등 대기업 노조의 도미노 이탈 조짐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위기 징후’라는 말이 내부에서 흘러나온다.
14일 민주노총 내부 자료에 따르면 공공운수 노조와 함께 민주노총의 양대 축인 금속노조의 정년퇴직자는 2018년 2186명에서 지난해 5432명으로 148.4% 늘었다. 2026년엔 한 해 정년 퇴직자가 6440명으로 늘어난다.
조합원 수도 2020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 금속노조 조합원 수는 2020년 말 18만6244명에서 작년 말 18만2653명으로 1.9% 줄었다.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 수는 작년 말 121만 명으로 조금씩 늘고 있지만 조합비가 잘 걷히는 전통 제조업 노조 세력이 쪼그라드는 게 주목할 변화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10년 내 조합원의 40%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20~30대를 발굴하지 못하면 조합의 힘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노동 운동할 시간에 돈 벌자”이런 고민에서 양대 노총이 적극 공략에 나선 분야가 ‘네카라쿠배’로 대표되는 정보기술(IT) 대기업이다. 특히 배달, 택배, 물류창고 등 고용인력이 많은 영역이 타깃이 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MZ세대의 가입률은 높지 않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등에서 일하는 배달기사 노조인 ‘라이더유니온’이 대표적이다. 양대 노총은 2020년 초부터 이들을 노조에 가입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선전전뿐 아니라 일부 노동 운동가가 직접 취업해 기사들을 설득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현재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수는 약 1500명. 쿠팡이츠 배달기사만 약 49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처참한 노조 가입률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마저도 적극 활동에 나서는 조합원은 많지 않다”고 귀띔했다.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는 “우리는 민주노총과 협력도 하지만, 경쟁도 하는 별도 독립된 노동조합”이라며 “양대 노총과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성 노조가 MZ세대의 특성과 플랫폼산업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해 세 확장에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배달, 택배, 물류창고 분야에서 일하는 MZ세대는 한 조직에 얽매여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MZ세대는 배달을 하다가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자유롭게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며 “노동운동을 통해 내 직장의 업무환경을 바꾸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홀로 일하는 업무 특성상 다른 사람과 얘기할 시간이 많지 않다. 현장에서 만난 조모씨(39)는 “대형 창고 안에서 일용직과 계약직, 무기계약직, 정규직이 어울려 일하는데 서로 통성명하거나 대화할 시간이 없다”며 “각자 일하고 시간이 되면 통근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고 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