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려 재판에 넘겨졌던 한 남성이 2년이 넘는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2020년 11월의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서울의 한 환승 지하철역에서 전동차에서 하차하던 여성 A씨의 왼쪽 엉덩이를 누군가 움켜쥐었다.
A씨는 즉시 고개를 돌려 자신의 왼쪽 바로 뒤편에 서서 하차하고 있던 남성 B씨를 확인했다. A씨는 B씨가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보고 B씨에게 “지금 뭐하시는 거냐?”, “어디를 만지는 거냐”고 항의하며 몸을 잡으려 했으나 B씨는 그대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A씨는 B씨를 2~3미터 뒤따라간 후 붙잡은 후 “도와달라”, “신고해달라”고 큰소리로 말을 했다. 남성 B씨는 그제야 귀에 꽂고 있던 무선이어폰을 뺀 후 아무말 없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A씨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표정한 B씨의 반응에 A씨는 흥분해 “네가 만졌잖아, 미친놈아”라고 소리를 질렀고, 주변 사람들의 신고를 받고 역무원이 현장에 도착했고, B씨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보며 인적사항을 요구했다. B씨는 곧바로 역무원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고, 얼마 후 현장에 도착한 경찰의 임의동행 요구에 응했다.
여성 A씨는 경찰 피해자 조사에서 “누군가 엉덩이를 만직 직후 돌아봤을 때 B씨가 가장 가까웠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B씨 뿐이었다”며 “다른 승객들이 많이 내리고 마지막쯤에 내리는 거라서 승객들끼리 밀착한 상태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팔을 뻗어서 제 엉덩이를 만질 만큼 꽉 붐비지도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B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겨울이라 마스크 때문에 김이 서릴까 봐 안경을 상의 왼쪽 호주머니에 넣고 탄다. 왼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오른손은 안경을 보호하기 위해 가슴에 붙이고 탄다. 항상 같은 자세로 지하철을 탄다. 내릴 때도 같은 자세로 내린다. 모르는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B씨는 하차 상황에 대해선 “하차 시 밀려 나와서 평소와 같이 다른 승객들이 밀친다고 생각했지, A씨가 저를 붙잡으려고 하는지 몰랐다”며 “환승통로 방향으로 2~3미터 이동하고 있었는데, A씨가 저를 벽 쪽으로 밀치고 나서야 저를 붙잡으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양측의 입장이 전혀 다른 상황에서 CCTV에는 A씨와 B씨가 지하철에서 하차하는 모습만 담겼다. A씨가 B씨의 팔을 붙잡으면서 뒤따라 나오며, 게시판 앞까지 가서야 B씨가 A씨를 돌아보는 장면이 담겼다. A씨 진술과 달리 많은 승객들이 지하철에서 우르르 하차하는 모습도 담겼다.
경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혐의를 적용해 B씨를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경찰 송치 내용 그대로 B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여성 A씨의 진술은 법정에서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는 “제가 느끼기엔 B씨가 제 엉덩이를 손으로 만졌다”면서도 “지하철 칸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만원인 상태로 서로 옷깃이 부딪혀있고 앞뒤로 접촉한 상태였다. 하차 시에도 제 뒤편에 사람들이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1심은 “남성 B씨의 해명이 수긍이 된다. 또 여성 A씨 엉덩이를 누군가 움켜쥐었다고 하더라도 A씨의 (B씨처럼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있던 사람이 왼손을 이용해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바로 왼쪽에 있었던 B씨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검찰은 “A씨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 반면, 남성 B씨 진술은 믿을 수 없는 변명에 그치고 있다”며 “B씨의 추행은 분명하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2부(맹현무 김형작 장찬 부장판사)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A씨 엉덩이를 만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인 A씨의 추측성 진술 등으로 B씨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 B씨는 무죄가 확정됐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