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 대외 전략인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가 지난해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비중을 대폭 줄이고 동남아시아와 중동에 투자를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일대일로 10주년을 맞은 올해 우방국들을 대거 초청하는 이벤트를 여는 등 성과를 과시할 전망이다. 규모 줄어드는 일대일로13일 상하이 푸단대 녹색금융개발센터의 '2022 일대일로 투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총 678억달러(약 86조4450억원)를 일대일로 사업에 투입했다. 2021년 687억달러에 비해 1.3% 줄었다. 2013년 사업 출범 이후 10년간 누적 투자액은 9620억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일대일로 투자의 두드러진 변화로 '리스크 회피'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지역별로는 중국이 그동안 공을 들여온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비중을 줄이고 동남아시아와 중동을 비중을 대폭 늘렸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지난해 중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자 수출 지역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또 미국이 자원 투입을 줄이는 중동 지역의 인프라 수요를 겨냥해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은 크게 양국이 맺은 인프라 건설 계약에 중국 은행이 자금을 융자하고 상대국 정부가 보증을 서는 '건설계약'과 중국 기업이 독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직접투자'로 구분된다. 통상 건설계약은 대부분 중국 국유 건설사가 맡으며, 직접투자는 민간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비중은 건설과 직접투자가 6대4 정도다.
건설계약의 지역별 비중 1위는 동남아로 2021년 13.9%에서 지난해 32.9%로 급등했다. 이어 중동이 19.2%에서 24.4%로 늘어 2위에 올랐다. 반면 30%였던 서아시아의 비중은 8.9%로, 16.6%였던 아프리카는 12.7%로 내려갔다. 아프리카는 직접투자에서도 2021년 42.5%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에는 9.1%로 줄어들었다.
중국은 지난해 러시아, 앙골라, 네팔, 스리랑카 등 14개국에 대한 일대일로 투자를 '0'으로 줄였다.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며 함께 중국을 견제하던 파키스탄에 대한 투자도 34% 줄였다. 크리스토프 네도필 녹색금융개발센터 소장은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국가들에서 재정난이 지속되자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투자를 중단한 것도 서방 제재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분석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2021년에도 20억달러 이상의 계약을 체결한 파트너 관계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이 지난해 중국이 러시아에 4억달러 이상을 투자했다고 보도한 바 있으나 중국 측은 이를 부인했다. 민간기업 의존도 상승개별 국가로는 헝가리가 76억달러를 유치해 1위에 올랐다. 이는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CATL이 헝가리에 유럽 두 번째 공장을 짓기로 한 데 따른 결과다. 사우디아라비아가 56억달러, 싱가포르가 25억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일대일로 투자를 유치한 국가 상당수가 재정난에 빠지자 서방 국가들은 이를 중국의 ‘채무 함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도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한 국가에 새로 신용을 제공하면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중국은 이에 리스크가 큰 대규모 사업을 벌이기보다 규모를 줄이면서 사업 수를 늘리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 참여 국가를 늘려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건설계약 평균 규모는 3억3000만달러로 2021년의 4억9600만달러보다 33%가량 줄었다.
중국은 올해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을 열 계획이다. 이 포럼은 2017년에 1차, 2019년에 2차가 열렸으나 이후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 중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우방국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그간의 성과를 강조하는 동시데 서방에 맞서는 공동 전선을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