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광풍을 불러온 ‘챗GPT’가 반도체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에 1만 개 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납품한 엔비디아가 ‘AI 시대의 황태자’로 부상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GPU와 짝을 이뤄 AI 학습에 쓰이는 고성능 D램의 수요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챗GPT가 얼어붙은 반도체 시장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 시가총액(10일 기준)은 5231억달러로 세계 반도체 기업 중 가장 크다. 이달 들어서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1위 업체 대만 TSMC(4945억달러), 메모리반도체 맹주 삼성전자(3406억달러)와의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엔비디아가 연매출(2022회계연도 269억달러)의 20배 넘는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챗GPT 영향이 크다. 챗GPT는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는 데 엔비디아의 ‘A100’ GPU 1만 개가량을 활용했다. AI 학습에는 순서대로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CPU)보다 동시에 여러 개의 작업(병렬처리)을 할 수 있는 GPU가 낫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이 2~3년간 대화형 AI에 수백억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엔비디아의 GPU 매출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챗GPT의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GPU와 짝을 이뤄 AI 학습·연산에 활용되는 고성능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는 TSMC도 실적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이 독자적으로 AI 반도체를 개발, 활용하고 있는 점도 반도체산업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아직 대규모 양산 단계는 아니지만 엔비디아 GPU의 독주를 막을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네이버가 삼성전자와 함께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등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황정수/선한결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