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에게 자사주 53주를 지급하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최근 회사에 제시한 임금·복리후생 교섭안에 포함된 내용이다. 10일 종가 기준 332만원 상당의 삼성전자 주식을 ‘노조원’이란 이유로 공짜로 달라는 주장이다. 매년 총 300만원에 달하는 여가·복리후생비와 휴가비 200만원을 지급할 것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경제계에선 “불안정한 경영 여건을 무시한 노조의 과도한 요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본급 10% 인상”
이날 산업계에 따르면 노조의 무리한 요구는 삼성전자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삼성 계열사 11곳의 노조로 구성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삼성그룹노동조합연대(삼성노조연대)의 주장 역시 어려운 경영환경은 아랑곳하지 않은 ‘생떼’라는 평가가 많다.
삼성노조연대는 2023년 임금협상 10대 공동요구안을 통해 “공통급을 10%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물가상승률 3.9%(OECD 전망치), 경제성장률 1.9%(OECD 전망치)에 지난해 임금상승률이 낮았기 때문에 4.2%를 추가해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제계에선 “중소기업 노동자와의 임금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1월 주요기업 간담회를 열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위해 대기업들이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그 재원을 협력업체 지원이나 청년 채용 등에 활용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임금인상 요구율 가이드라인’과 비교해도 삼성노조의 요구는 과하다는 반응이다. 올해보다 경제 상황이 좋았던 지난 3년간 한국노총의 임금인상 요구율은 2020년 7.9%, 2021년 6.8%, 2022년 8.5%였다. ○법적 근거 없는 공동교섭 요구삼성노조연대의 공동교섭 요구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삼성노조연대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나서 그룹 차원에서 교섭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삼성노조연대는 2021년과 2022년에도 공동 교섭을 요구했지만 진행되지 않았다. 회사마다 경영환경과 근로조건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올해도 삼성노조연대에 참여한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노조는 삼성연대의 교섭 요구와 별개로 회사와 개별 교섭을 진행 중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동교섭 요구는 회사가 응할 의무도, 법적인 근거도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성과급을 동일하게 지급하라’는 주장에는 노조의 과도한 경영 개입이란 평가가 많다. 삼성노조연대는 삼성화재의 OPI(초과이익성과급)율은 47%인데 자회사인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은 25%로 결정된 것을 문제삼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선 “성과급은 기업의 경영 성과에 따라 지급되는 것으로 노조가 지급 기준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건 경영개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투쟁보다는 상생 협의 필요삼성 노조의 활동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최근엔 강성 노조로 꼽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까지 나서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최근 삼성전자·삼성SDI 직원 44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기반으로 “삼성전자·삼성SDI 직원 10명 중 7명 이상은 성과주의적 임금체계에 부정적”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삼성SDI 직원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전체 임직원(작년 6월말 기준 12만7890명)의 0.03%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갖고 성과급 제도를 폄하하는 게 타당하냐는 것이다.
노조 집행부의 거친 언행에 대한 삼성 직원들의 반감도 큰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노조연대는 “결단하면 상생의 길이 열리고 거부하면 삼성 노동자의 분노와 투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 20~30대 직원들 사이에선 “투쟁 등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직원들의 분위기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행태”라는 목소리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내부에선 회사가 생사기로로 몰리는 상황에선 투쟁보다 ‘상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까지도 생존을 위해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라며 “삼성의 노조는 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황정수/배성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