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놀랍게도 직업교육은 ‘교육기본법’에 따른 하위 법령이 없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현 교육기본법)은 1998년 모든 국민이 교육받을 권리를 정하고자 개정됐다. 초·중등교육과 고등교육 관련은 제9조, 평생교육은 제10조, 유아교육은 제20조에 명시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각각의 기본법과 시행령 등을 마련했다. 그러나 제21조 직업교육은 선언적 내용만 기술돼 있을 뿐이다. 학교 교육과 평생교육을 통해 직업에 대한 소양과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기반이 없는 실정이다.
직업교육에 대한 하위 기본법이 아직까지 제정되지 않은 이유는 우리나라 직업교육에 대한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은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농공상이라는 유교적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면서 고등직업교육을 대표해온 전문대학은 일반대학에 비해 낮은 수준의 인력을 양성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하다. 전문대학은 3년제로 수업 연한을 다양화하고 전공 심화를 통해 학사학위를, 마이스터대 과정을 통해 석사학위를 수여함에도 불구하고 일반대학은 4년제, 전문대학은 2년제 대학으로 지칭될 따름이다.
지난번 에세이 ‘대만 고등직업교육에서 배운 것’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만은 2015년 기술직업교육법을 제정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직업교육의 위상 제고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대만 고등직업교육의 국가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대학이 출범하면서 직업교육과 일반교육의 수평적 양립체제(two-track)가 정립됐다. 대만의 전체 대학 148개 중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과학기술대학과 단기기술대학이 80개에 해당하며, 학술연구는 일반대학, 산업 인재 양성은 과학기술대학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아가면서 대만의 직업교육은 벤치마킹의 주요국이 됐다.
직업교육법 제정은 직업교육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교육법이 제정되면 학교급 간 직업교육을 체계적으로 연계하고,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산업체 등 주요 직업교육 관련 주체의 직업교육에 대한 책무성을 강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직업교육 핵심 주체 간 기능 및 역할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가 명확해져 중장기적으로 직업교육 정책을 일관되고 안정되게 추진할 수 있다.
며칠 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그리고 사이버대의 장벽을 허물어 각 대학에서 유연하게 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각 대학들이 사회변화에 발맞춰 혁신을 이뤄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인 기틀과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동안 전문대학이 쌓아온 산업수요 맞춤의 역량 중심 직업교육 노하우를 자유롭게 발휘해 나갈 수 있도록 직업교육법의 제정을 통한 국가적 차원의 존중과 보호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