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무덤' 파인다이닝…잭팟 터트린 해비치

입력 2023-02-09 17:26
수정 2023-02-16 19:52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 시장은 대기업의 무덤으로 통한다. 특급호텔과 백화점을 운영하는 롯데, 신세계그룹조차 독자 레스토랑 브랜드를 확장한 사례가 거의 없다. 1위 식품사 CJ제일제당은 미쉐린가이드 3스타를 받은 한식당 ‘모수 서울’ 등 파인 다이닝 매장을 여러 개 운영 중이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대기업 계열사가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해비치)다. 레스토랑과 건물 위탁 운영을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로 경제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0일엔 ‘중심(중식)’ ‘스시메르(일식)’ ‘마이클바이해비치(양식)’ 3개 브랜드로 구성된 ‘해비치 레스토랑’을 서울 종각에 이어 명동으로 확장한다. 주목받는 확장세 해비치 레스토랑이 들어서는 곳은 중국 대사관 인근 옛 KT서울중앙전화국 자리다. 15층짜리 복합 건물로 새로 단장한 이곳 3층 전체에 ‘수운(한식)’을 뺀 3개 브랜드가 입점한다.

부산의 마이클바이해비치 분점,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팝업 레스토랑을 포함하면 해비치가 호텔 밖에서 운영하는 고급 식당은 9개가 된다. 해비치 관계자는 “명동에 중국 관광객이 돌아올 것에 대비해 중식 레스토랑 중심은 활생선, 갑각류 등을 이용한 정통 광둥식 메뉴들을 추가했다”며 “마이클바이해비치에선 더욱 정교한 플레이팅(음식을 그릇에 담는 것)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건물 5~15층의 ‘르메르디앙&목시’ 호텔의 운영도 해비치가 맡았다. 해비치는 종각 센트로폴리스 빌딩에 이 같은 사업 모델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바 있다. 입주사 전용 라운지, 피트니스 등 편의시설을 운영하고, 급식 서비스도 제공한다. 서울역 인근 그랜드센트럴 빌딩을 포함해 현재 위탁 운영 계약을 맺은 건물은 세 곳이다.

해비치는 외식 부문 실적이 개선되면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에도 흑자를 냈다. 해비치에 따르면 지난해 외부 레스토랑 매출만 전년보다 25% 증가했다. 그 결과 전체 매출은 1529억원으로, 사상 처음 1500억원을 돌파했다. “발효 음식 대표 주자 될 것”해비치는 현대차그룹 57개 계열사(작년 9월 말 기준) 중 유일한 기업 대 소비자(B2C) 서비스 기업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셋째 딸인 정윤이 사장이 이끈다.

해비치는 품질을 천착하는 그룹 문화에 걸맞게 파인 다이닝 시장 진출을 앞두고 오랜 기간 공을 들였다. 스시메르를 열기 전, 전국의 내로라하는 스시 전문점 200여 곳을 샅샅이 훑었다.

2015년 프랑스식 파인 다이닝을 제주에서 선보일 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계적 레스토랑 ‘테스트 키친’의 수석 셰프를 영입하기도 했다.

해비치가 파인 다이닝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출발점은 2014년이다. 이때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제주 안에 ‘푸드랩’이라는 연구소를 열었다. 전국의 식자재 산지와 농수산물 시장, 국내외 요리 명장 등을 찾아다니며 메뉴를 개발하고, 미식 트렌드를 연구했다.

작년 5월엔 서울 신사동에 ‘스패출러’라는 식음료 연구개발(R&D) 센터를 열었다. 2개 층에 공유 주방, 숙성 발효실, 팝업 레스토랑 등을 갖췄다. 이곳은 코로나19 이후 발효 음식이 글로벌 미식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을 고려해 K발효 음식의 산실로 발전시키는 중이다. 해비치 관계자는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의 오랜 가풍”이라며 “한국의 고급 음식을 세계인에게 선보이는 것이 해비치의 목표”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