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우주선의 문이 열렸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또 다른 우주가 펼쳐졌다. 하늘엔 1300개의 별이 떠 있고, 눈앞엔 또 다른 행성들이 반짝였다. 롤스로이스의 ‘뉴 블랙배지 고스트’(고스트)와의 첫 만남은 그랬다. 핸들에 손을 올리고 액셀 페달에 발을 올리는 순간, 여의도의 도로는 구름 위로 변했고 서울의 밤 풍경은 SF 영화 속 한 장면이 됐다.
5억5000만원이 최저 옵션인 고스트는 슈퍼카 시장에서 가장 대표적인 ‘비스포크’ 모델이다. 내 마음대로 옵션을 바꿔 나만의 차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색상 옵션만 4만4000가지. “우리집 강아지 털 색상으로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정확히 그 색상의 강판으로 차가 제작된다. 시승한 차량은 은은하게 빛을 내는 ‘트와일라잇 퍼플’이었다.
고스트의 첫인상은 묵직했다. 운전석에 오르기 전 눈으로 먼저 감상했다. 무게 2490㎏, 차 길이 5546㎜. 그 숫자만으로도 중후함이 느껴지는데, 전면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판테온 그릴’과 눈을 맞추면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옆선은 또 어떤가. 장인이 붓으로 한 땀 한 땀 그린 코치라인이 물결치고, 45㎏의 페인트를 미립자 단위로 바른 외장엔 손가락 지문 하나도 묻히기 싫을 만큼 우아함이 느껴졌다.
우주 비행사가 된 듯한 기분으로 시동을 켜고 발을 올리자 고스트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배기량 6750㏄의 12기통 엔진은 급가속을 해도 스포츠카처럼 튀어나가지 않도록 가볍고 매끄럽게 가속했다.
서울을 빠져나가며 점점 속도를 높여봤다. 정지 상태에서 4.5초 만에 시속 100㎞에 도달했다. 그 이상 밟아도 뒷좌석에서 속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고스트는 코너링에서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장애물 사이를 통과하는 슬라럼, S자 주행을 하는 코너링 등을 시험하니 육중한 무게에도 재빠른 코너링이 여러 번 놀라게 했다.
김포까지 50㎞를 달린 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스피커의 볼륨을 올렸다. 롤스로이스가 개발한 비스포크 오디오 RPE는 18개의 스피커 시스템으로 구축돼 있다. 차 어디에 앉아도 시트마다 최적화된 컨트롤이 극강의 사운드를 심장에 꽂았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