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당사자들이 노동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서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위원회와 자문단을 중심으로 노동개혁이 돌아가게 생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개혁이 시급한만큼 정부가 일단 '개문발차' 했지만, 노동계 측은 불참을 고집하고 경영계도 정부만 쳐다 보는 형국이라는 비판이다.
고용부가 주관하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와 상생임금위원회가 출범한 가운데, 노사정 대화를 주관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9일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제도관행개선단, 이중구조개선위 등을 잇달아 발족했다. 대부분 노사 당사자 보다 교수 등 전문가들 위주로 구성됐다.
경사노위는 올해도 '공무원?교원 근무시간면제심의위', '계속고용 논의회의체'를 출범시킬 예정이나 이 역시 전문가 위원회로 꾸려질 가능성이 높다. 한시 조직으로 발족해 윤정부의 노동정책 밑그림을 그렸던 미래노동시장연구회도 해단식 없이 2기 출범 가능성을 열어놨다.
'노동계 패싱'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그간 경사노위 등에서 노사 당사자가 직접 참여했지만 소득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친노동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노총 출신인 문성현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임명했음에도 민주노총은 지속적으로 불참했다"며 "한국노총이 참여해 명맥은 간신히 이었지만, 문 위원장이 재임한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도출한 노사정 합의는 손에 꼽는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1999년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를 탈퇴하고 현재까지 사회적 대화에 불참 중이다.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윤정부 집권 초 여당에서 노사정 대화 무용론, 경사노위 폐지론까지 등장했다"며 “어차피 민주노총은 안들어오고, 한국노총은 반대만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고용부 출신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도 8일 제도관행개선단 회의에서 “위기의식이 있음에도 그간 제대로 된 (노동정책) 논의조차 힘들었다”고 에둘러 지적했다.
정부도 이런 구도를 놔두면 노동개혁은 답보 상태에 그칠 것이란 판단이 선 것으로 분석된다. 노동계의 의견을 자문위의 FGI(집중 그룹 인터뷰)나 노동계 출신 학자들을 자문위에 섭외해서 수렴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입장도 엿보인다.
이런 와중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8일 정릉 민주노총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과 고용부 장관을 향해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문수 위원장은 9일 “위원회는 20년 넘게 민주노총의 자리를 비워놓고 있다”며 “미래세대를 위해 경사노위에 참여해주기를 바란다”고 응수했다.
또 다른 개혁 당사자인 경영계도 대상이 되길 거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 회의에서 자문단장인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모두 발언을 통해 "(경영계가) 대기업에서 불거지는 각종 문제에 대한 자정, 개선 노력 없이 노동개혁 요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부 위원들은 "경영계가 노동개혁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전해졌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