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여행 플랫폼에 종속된 한국 여행 산업의 현실을 알 수 있는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렌터카를 이용하면서 겪은 일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아마도 ‘법적’으론 소비자가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글로벌 플랫폼들의 황당한 ‘환불 약관’에 관한 얘기다."칼만 안 들었지…" 글로벌 1위 렌터카 서비스 업체에 당한 피해자 사연사연은 이렇다. A씨는 렌터카닷컴을 통해 해외 여행지에서 차를 대여하기로 했다. 기간은 3박 4일. 약 74시간 이용 계약이었다. 여행지 공항의 렌터카 업체 B사 카운터에 도착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오랜만의 해외여행 탓이었던 지 A씨와 일행 모두 국제 면허증 소지를 ‘깜빡’했던 것.
B사 직원은 난감했지만, 규정상 면허증이 없는 고객에게 차를 빌려줄 수는 없었다. A씨는 당장 환불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보험을 포함해 약 78만원을 허공에 날릴 수는 없었다. B사 카운터 직원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B사는 어떤 페널티도 물지 않을게요. 렌터카닷컴에도 그렇게 통보하고요. 하지만 렌터카닷컴은 아마 취소에 따른 위약 수수료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정도라면…”. A씨는 일단 기다렸다. 카드 결제내용에 환불 메시지가 뜨기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렌터카닷컴 홈페이지에 들어가 하단 구석에 있는 콜센터 번호를 어렵게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한국어 직원을 원하시면 2번을 누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영어 안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한국인 직원이 있구나”
하지만 2번을 누른 순간, 통화가 끊겨 버렸다. ‘실수였나’ 싶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며칠에 걸쳐 하루에 몇 번씩 같은 행위를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할 수 없이 영어만 사용할 수 있다는 콜센터 직원에게 연결을 시도했다. 10초 만에 연결이 됐다. 떠듬떠듬 설명하는 A씨의 얘기를 한참 듣던 콜센터 직원은 친절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죄송하지만 보험료(약 10만원)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모두 환불할 수 없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약관을 달라고 했다. ‘만일 당신이 취소한다면…’이라고 시작되는 환불 정책의 요지는 이랬다. ‘당신의 렌탈 계약이 시작된 이후에 취소한다면 당신은 아무런 환불을 받을 수 없다. 카운터 직원은 필요한 서류를 미비한 경우에 렌탈 계약의 시행을 거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A씨는 비행시간 지연으로 계약 시간보다 약 1시간 늦게 카운터에 도착했다. 렌터카닷컴이 정한 약관에 따르면 A씨는 환불받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A씨의 ‘억울한 사연’은 여기까지다. 뭔가 찜찜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이쯤에서 포기하기 마련이다. 약관에도 정확히 쓰여 있지 않은가.
한국어 직원 연결 버튼 누르면 끊어지는 콜센터기자는 혹시나 해 A씨의 사연을 한국소비자보호원(이하 소비자원)에 문의했다. 소비자원은 ‘해외사업자가 제공하는 물품(용역)을 소비생활을 위하여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비자 불만 및 피해’를 해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원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글로벌 여행 플랫폼을 이용해 해외 호텔을 예약했다가 취소 문제로 피해를 본 사례들이 꽤 많이 접수됐다.
A씨의 사례에 대해 소비자원은 “국내법에 준하는 설명”이라는 것을 전제로, 3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고 했다. 렌터카닷컴이 부당이득을 수취했으며, 약관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았고, 약관 자체가 부당하다는 반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부당이득수취에 대해 소비자원 관계자는 “통상 플랫폼이 얻는 이익은 중개에 따른 수수료”라며 “A씨의 사례에서 렌터카닷컴은 중개 수수료뿐만 아니라 실제 렌터카 상품을 제공하는 B사가 가져갔어야 할 이득까지 모두 수취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플랫폼이 이런 행위를 했다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소비자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소비자원의 지적은 렌터카닷컴의 ‘황당 약관’이 약관법에 어긋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개별 약관의 불공정행위를 따지기 위해 관련 법 조항을 마련해놨다. 약관작성자가 상대방의 이익과 합리적 기대에 반하지 않고 형평에 맞는 약관조항을 작성하여야 한다는 취지이고, 이에 반하여 공정성을 잃었을 경우 시정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약관법은 국내 법인 만큼 글로벌 플랫폼에 적용할 수는 없다. 글로벌 플레이어 없는 한국 여행 산업, 애꿎은 소비자만 해외 업체의 '봉'해외여행에 관한 한 한국 소비자는 ‘봉’이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글로벌 여행 플랫폼 업체들의 ‘봉이 김선달’식 영업의 최대 희생자다. 연간 3000만명(코로나19 이전 기준)에 달하는 한국 관광객들은 해외에 나갈 때 렌터카닷컴을 비롯해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 등 해외 플랫폼을 이용한다. 이들에 지불하는 수수료만 연간 수조 원에 달한다.
소비자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글로벌 OTA 거래조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6월 기준 246건이었던 글로벌 여행 플랫폼의 항공권 관련 소비자불만 건수는 1년 새 96.3% 증가한 483건이었다. 접수된 항공권 판매 글로벌 OTA 관련 소비자불만 6260건을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취소·변경·환불 지연 및 거부'가 3941건으로 63.0%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게다가 선불 개념으로 받는 수십조원의 예치금 덕분에 글로벌 여행 플랫폼들은 마치 금융 회사처럼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익을 얻고 있다. 렌터카닷컴의 모기업으로 나스닥 상장사인 부킹 홀딩스는 글로벌 여행 수요 회복으로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89억 4800만 달러, 57억 52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2.87%, 16.74%씩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적으로, A씨의 사례는 K여행 산업이 뒤처진 탓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하나투어 같은 여행사든,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투자를 받은 야놀자든, 아니면 네이버나 카카오가 됐든 아무튼 어떤 기업이라도 여행·레저와 관련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한국 소비자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지 않을까.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