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곁으로"…한국에 공장 짓는 日 반도체 장비업체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입력 2023-02-09 10:10
수정 2023-02-09 10:30


일본 반도체 제조장비 기업들이 잇따라 한국에 연구개발(R&D)과 생산 시설을 신설하거나 확장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공정이 날로 복잡해지는데 맞춰 주요 고객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의 관계를 보다 밀착시키기 위해서다.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고쿠사이일렉트릭은 올해 한국의 평택 공장을 확장한다. 수십억엔을 투자해 클린룸을 증설하는 등 본격적인 개발 기능을 갖출 계획이다. 고쿠사이일렉트릭은 웨이퍼를 에칭 작업으로부터 보호하는 장비(성막장비)를 만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고객이다.

고쿠사이의 R&D센터는 도야마현에 있다. 고객사가 웨이퍼를 가져와서 개발과 평가를 진행하려면 두 나라를 여러 차례 오가야 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입국규제가 장기화하자 한국 고객들은 "좀 더 가까운 곳에 R&D 시설을 마련해 줄 수 없느냐"고 요청했다. 고쿠사이일렉트릭 평택 공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에서 1시간 거리다.

히타치하이테크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한국과 미국, 대만 등 3개 나라에 수백억엔을 투자해 R&D 거점을 신설·확장한다. 주고객인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 '반도체 빅3'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다. 작년 가을부터 가동한 미국 오리건주 R&D 시설은 인텔의 반도체 공장까지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히타치하이테크는 반도체 회로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세정하는 식각(에칭)공정 장비와 회로측정 장비 등을 생산한다. 주요 R&D 시설은 일본 이바라키현과 야마구치현에 있다. 해외 고객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여와 장치를 테스트하려면 몇 주가 걸렸다.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는 웨이퍼를 일본으로 들여오는데도 수고가 들었다.

일본 회사 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빅3'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는 지난해 한국 경기도에 R&D 거점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어플라이드의 매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고객과 밀착 관계를 만드는데 거액을 투자하는 건 반도체 기술의 난이도가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제조공정이 고도화하면서 고객과 언제든지 공동 개발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지 않고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첨단 반도체 업체들이 3~5개로 과점화하면서 장비회사의 선택과 집중이 수월해 진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기술이 고도화하는 만큼 장비 업체의 개발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 5대 반도체 장비업체의 연구개발비는 3000억엔(약 2조8845억원)으로 10년 전보다 2.3배 늘었다.

영국 조사회사 옴디아의 미나미카와 아키라 선임 컨설턴트는 "연구개발 투자를 멈추면 경쟁에서 패배하고 점유율이 하락해 재편 대상(경쟁사의 인수 대상)이 되고 만다"고 설명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