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경제와 역사산책] '지극히 평온했던' 베네치아에서 배우는 교훈

입력 2023-02-08 18:06
수정 2023-02-09 00:23
오늘날의 베네치아는 주로 낭만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유럽일주’ 여행 패키지에 반드시 포함된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관광 이전에 무역으로 먹고살았다. 이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침공에 굴복해 1797년 멸망할 때까지 1000년 넘게 부유하고 강력한 독립 국가로 존립했었다. 작은 섬과 갯벌들을 메워 건립한 해상 도시 베네치아에서 천연자원이라고는 바닷물밖에 없었다. 생활용수는 빗물을 받아 우물에 저장해서 사용했다. 식량과 생필품을 모조리 수입해야 했던 베네치아는 그야말로 무역이 아니면 먹고살 수 없었다.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국력을 유지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탈리아 내륙에서부터 아드리아해 연안을 따라 지중해 키프로스 섬에까지 넓게 펼쳐진 해상제국을 관리했다. 이 나라의 공식 명칭 앞에는 ‘세레니시마’(Serenissima·지극히 평온한)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이 수식어에 관사를 붙인 ‘라 세레니시마’는 베네치아를 지칭하는 별명이다. ‘지극히 평온한’ 베네치아의 힘은 아드리아해를 평온하게 유지하는 강력한 해군 군사력과 해상무역에서 나왔으나, 내부적 결속력도 큰 몫을 했다. 소수의 귀족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는 했으나, 이들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정쟁과 부패를 예방했고 상인들이 주도하는 경제 발전을 지원했다. 내부의 평온뿐 아니라 국제적인 관계에서도 베네치아는 갈등보다는 타협과 조정을 선호했다.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을 병들게 한 황제파(Ghibellini·기벨리니)와 교황파(Guelfi·구엘피)의 진영대결에서 베네치아만은 자유로웠다. 베네치아 공화국이 소유한 내륙도시나 타국의 항구들에도 일정한 자치권을 보장했다. 순전히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은 가급적 회피했다. 정복은 하더라도 수탈하지 않았다.


21세기 초 대한민국은 중세와 근세 시대 베네치아가 그러했듯이 광범위한 지역과 교역을 하며 사는 무역 국가다. 대한민국은 베네치아처럼 해상 제국을 직접 경영하지는 않지만 교역 지역은 베네치아 공화국보다 훨씬 더 넓고 다양하다. 경제 발전 초기만 해도 ‘수출’이 대한민국의 키워드였다. 수출을 통해 빈곤을 탈출하려는 원대한 꿈을 담아 1962년에 KOTRA(대한무역진흥공사)를 설립했다. KOTRA가 환갑의 나이를 넘긴 오늘날에는 수입도 수출 못지않게 큰 몫을 차지한다. 거의 모든 한국인이 즐기는 커피의 원두는 한반도에서 나지 않는다. 생존에 필수적인 원유와 천연가스도 해외에서 사와야 한다.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과 교역하는 대한민국에 베네치아가 추구한 ‘지극히 평온한’ 국제관계는 생존의 기본 조건이다. 또한 베네치아 공화국처럼 서로 물고 뜯는 정쟁을 피해야 천연자원 빈국 대한민국의 무역을 통한 경제 발전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파와의 대결이 생업인 정치인들도 국내 정치 싸움터에서 무역으로 엮여 있는 타국과의 불화를 조장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역의 혜택은 정파와 진영을 막론하고 골고루 돌아간다. 일본과 중국도 우리의 이웃일뿐더러 중요한 무역 파트너다. 이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해서 우리가 얻을 이익은 많지 않다. 또한 다른 나라들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도 삼갈 일이다.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러시아와 싸운다고 해서 우리까지 자원 대국 러시아와 원수질 이유는 없다. 미국의 적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우리의 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원 빈국이자 무역대국인 대한민국은 국내 정치판은 몰라도 국제관계에서만은 평온함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