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바쁘게 분단이 됐고 뒤이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나마 남아있던 경제 기반이 처절히 파괴돼 그야말로 세계 최빈국 상태에서 출발했다. 그러던 것이 경제성장을 거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부터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 받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가 선진국 문턱까지는 왔지만 계속 성장할 것인지, 아니면 후퇴해버릴 것인지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한국경제가 이룩한 경제적 성과의 파괴나 약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움직임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 움직임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강성 노조 활동이다. 지난 정부는 강성 노조의 여러 탈법 행위를 방치 또는 방조했다. 한국 노조는 근로손실 일수가 일본보다 수백배 많고 기업 파괴적 활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이 법 테두리 내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전개되고 있는 강성 노조의 활동은 이대로 방치하면 그간 성취한 한국경제의 토대를 파괴할 수 있겠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노사관계의 합리적 규범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할 국회는 소위 ‘노란봉투법’을 통해 강성 노조 활동을 합법화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여 한국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상징적 산업인 반도체 산업 육성과 관련된 문제도 걸려 있다. 우리의 주요 경쟁국인 대만, 미국, 일본이 입법을 통해 자금 지원, 법인세 감면, 인재 양성, 부지 제공 등 여러 측면에 걸쳐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적극 지원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부자 감세는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입법화(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법)를 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도체 산업은 수출산업이고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반도체 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는 국부를 창출하고 기술력을 향상시킨다. 수출이 늘어나면 관련 산업이 발전하고 내수 산업이 육성된다.
한국 경제는 가공무역입국을 추진해 왔기 때문에 수출이 증가해야 직간접적 관련 산업 종사자의 소득이 창출된다. 반도체 산업 수출이 증가하지 않으면 파생소득이 발생하지 않고 그만큼 전체 소득이 줄어들면서 배분할 수 있는 부(富)를 축소시킨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을 줄이면 전체의 부가 축소되고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소득도 줄어들게 하므로 부자 감세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지금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쌀 강제매수법’ 강행 역시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가 저소득 국가일 때는 수요 이상으로 생산된 쌀을 정부가 비축해 두는 것은 혹시 모를 흉작을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정책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우리나라는 각자의 입맛에 맞춰 다양한 농산물을 소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더 이상의 쌀 수요 증가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무리해 쌀 강제매수를 추진하면 일시적으로는 가능해도 지속하긴 어려울 것이며 종국엔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농민들에게는 수요의 변화에 맞는 농작물을 생산하도록 유도하고 적절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로 인해 수요예측이 상당 부분 가능해진 시대다. 각 농산물 수요에 맞춰 생산하도록 정책 당국이 적절히 유도하고 전작에 따른 비용 증가분을 지원해 준다면 농민들에게도 결코 불리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부산 김해공항을 확충 내지 이전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야 정치인들의 정치 논리에 의해‘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가덕도는 공항으로서 많은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면서 건설비용도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게 문제다. 국제적 전문가들에 의해 이미 다른 선택이 제시됐으나 인기 영합으로 가덕도 신공항이 결정돼 건설비용은 월등히 많이 투입하면서도 안정성은 담보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이처럼 선진국에 턱걸이한 한국경제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애당초 이러한 문제들의 씨앗은 우리가 빈곤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극빈 상태에서 탈피해 고소득 국가로 가는 과정에선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불만 요소를 억눌러 왔다. 그러던 것이 국민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그동안 억눌려왔던 욕구들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룰 때 자칫 합리성을 상실하고 소수 강성분자들 요구에 부화뇌동하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성장기반을 일거에 허물어버릴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이 정치의 선진화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이 경제기반을 계속 지켜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혼란으로 되돌아갈 것인가는 정치의 선진화를 달성해낼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어렵게 쌓아 올린 이 경제기반을 더욱 단단히 다지고나아가 기존 선진국 경제를 능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명확한 목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인들이 지혜를 모으는 활동이 바로 정치의 선진화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모습을 보일 때 국민들은 지금과 같은 정치불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우리나라도 명실공히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여야 정치가들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