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의 '디스인플레이션'…통화정책상 의미는?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입력 2023-02-05 17:41
수정 2023-03-07 00:01
세계 경제와 증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변수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와 ‘Fed 의장의 기자회견’이다. 굳이 어느 것이 더 영향력이 크냐를 따지면 작년 3월 금리 인상 이전까지 ‘전자’였지만 그 이후에는 후자가 커졌다. Fed의 통화정책 변경은 시장에 읽히고 있지만 제롬 파월 의장(사진)의 기자회견에서는 의외의 발언이 나오기 때문이다.

올해 첫 Fed 회의 기자회견에서 파월의 기조가 바뀌자 미국의 빅테크와 테슬라 주식 투자자들이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작년 잭슨홀 회의 이후 Fed 회의 결과보다 더 매파적 발언으로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안겨줬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로 돌아섰다. 30분 남짓한 기자회견에서 ‘디스인플레이션(이하 디스인플레)’을 무려 15차례나 언급했다.

디스인플레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이 용어가 어디서 나왔느냐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인플레는 총괄적으로 ‘비용 상승’과 ‘수요 견인’으로 나눠진다. 상승 속도에 따라 마일드·갤러핑·하이퍼, 경기와 관련해 디플레이션·스태그플레이션·골디락스, 정책 의지와 결부돼 리플레이션·디스인플레, 요즘 뜨는 공유 경제와 관련해 데모크라플레이션도 있다.

디스인플레는 ‘인플레가 둔화되는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통제 가능’ 여부다. 파월 의장이 디스인플레를 강조한 것은 초기 ‘일시적’이라 오판하고 선제 조치를 취하지 못해 통제할 수 없는 행태변수가 돼버린 인플레가 잡히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인플레 통제 여부가 통화정책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2년 전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재닛 옐런 재무장관 간 설전을 되새겨 보면 알 수 있다. 서머스 교수는 통제 불가능하다고 보고 선제 조치를 요구한 데 반해 옐런 장관은 통제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Fed와 파월 의장은 ‘평균물가목표제’까지 도입해 옐런의 입장을 뒷받침했다.

통화정책의 생명인 ‘선제성(preemptive)’을 지키느냐 문제는 코로나발 인플레처럼 같은 통화정책 시차(9개월~1년) 내에 모든 가능성이 한꺼번에 제기되는 ‘다중 복합 공선형’ 국면에서 특히 중요하다.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인 코로나 사태는 아무도 모르는 위험이기 때문에 초기 충격이 커 Fed는 무제한 통화 공급으로 대응했다.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MV=PT, M은 통화량, V는 통화유통속도, P는 물가 수준, T는 산출량)에 따르면 통화 공급은 그대로 물가로 연결된다. 코로나 사태는 백신만 보급되면 세계 경제가 ‘절연’에서 ‘연계’ 체제로 이행되고 돈이 돌기 시작하면 ‘쇼크’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갑작스럽게 인플레 우려가 불거진다.

인플레 지속 여부를 놓고 ‘일시적’이냐 논쟁이 거세질 무렵 2021년 2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높게 나오자 정책 요인에 의해 촉발된 인플레가 수요 견인 인플레로 옮겨지면서 하이퍼 인플레까지 우려됐다. Fed가 추정하는 미국 경제 잠재성장률이 1.75%인 점을 감안하면 2021년 2분기 성장률 7%는 무려 5.25% 포인트의 인플레 갭이 발생하는 수준이다.

만약 2년 전 선제 조치를 취했더라면 Fed 설립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큰 폭인 450bp(1bp=0.01%포인트)까지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었느냐는 뒤늦은 반성이 Fed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와 증시에도 대침체, 붕괴론이 나올 만큼 충격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올해 1월 실업률이 3.4%로 고용창출 목표가 도달한 여건에서 행태변수였던 인플레가 통제변수가 된다면 성장률 등 다른 거시경제 목표도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는 의미다. Fed가 다음달에 수정 발표할 경제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을 1% 내외(작년 12월 전망 때는 0.5%)로 상향 조정하더라도 경기 침체 우려를 불식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의 디스인플레 발언 이후 시카고(CME) 페드워치는 올해 금리 인상이 중단되거나 내릴 확률이 80%가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 3월 이후 직격탄을 맞은 빅테크 기업과 테슬라 투자자들이 희망을 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경기 부양을 위해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추진한다면 고금리와 강달러 부담이 한꺼번에 줄어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