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0년 동안 계속 활력이 넘쳤다. 그런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이 미국 영토를 침공한 건 이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러다간 일본제국이 망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이런 무모한 공격을 불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가 됐다. 미국 우파들의 시각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저자 마이클 베클리는 미국 터프츠대 교수이자 미국기업연구소(AEI) 방문연구원이다. 공동 저자인 할 브랜즈는 존스홉킨스대 교수이자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이다. 두 사람 모두 미국 국가안보 분야 정부기관에 조언하고 있다.
저자들은 전쟁의 위험은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던 나라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으로 접어들 때 가장 커진다고 말한다. 1914년의 독일이 그랬다. 1890년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물러나면서 독일의 복잡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동맹 외교는 마침표를 찍었다. 독일은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다. 경제도 흔들렸다. ‘지금 아니면 기회는 없다’는 독일 지배층의 인식은 결국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는 ‘투키디데스 함정’을 반박하는 주장이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2017년 펴낸 <예정된 전쟁>에서 신흥 강국이 패권국과 경쟁한 역사적 사례 16개에서 12개가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하면서 이 말을 대중화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신흥국 아테네와 패권국 스파르타가 맞붙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그러나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의 저자들은 그 당시의 아테네도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앞둔 강국으로 분류한다.
이 책의 관심은 중국이 부를 전쟁의 위험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빨리 오느냐에 집중돼 있다. 저자들은 중국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인구통계학적 호황이 끝나가고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젊고 풍부한 노동력을 토대로 일궈낸 경제 성장이 더 이상 지속되기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덩샤오핑이 추구한 개혁·개방 정책도 시진핑 시대 들어 흐릿해졌다.
주변 환경도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세계화가 후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을 바라보는 주변국의 눈초리도 매서워지고 있다. 많은 나라에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도 중국이 미국보다 불리한 점이다.
중국이 부상하는 강국이든, 쇠퇴를 앞둔 강국이든, 중국발(發)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는 대다수가 동의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그 시기가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중 경쟁은 100년이 걸리는 마라톤이 아니라 10년이면 끝나는 단거리 경주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이번 10년, 즉 2020년대에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긴급성은 <백년의 마라톤>, <롱게임> 등 중국의 부상을 다룬 기존 책들과 결을 달리한다. 미·중 경쟁은 장기전이 될 것이란 일반인들의 생각은 물론 장기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미국의 대중 정책에도 배치된다. 미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중국을 이길 미래 기술에 국방비를 집중 편성하는 등 중국과의 경쟁을 길게 보고 전략을 짜고 있다.
중국이 정점을 지나고 있는지에 대해선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중국발 전쟁이 임박했고,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은 미국 주류에서 점점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이 책을 한낱 분석가들의 주장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책에 실은 해제에서 “미국과 러시아 간 경쟁 격랑에 휩싸인 ‘20세기 쿠바’처럼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충돌에 영향받는) ‘21세기판 쿠바’가 될 수도 있다”며 “신냉전 국면이 향후 10년간 거칠어지고 그 이후에도 지속한다면 한반도에도 큰 파장을 낳을 것”이라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