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은 증권가의 뜨거운 감자였다. 증시 불황 속 2차전지·태양광 업종을 주도주 반열에 올려놓으며 증권가를 달궜다. IRA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한 상황에서 올해는 '유럽판 IRA'인 핵심원자재법(CRMA)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수혜주로 폐배터리 관련주가 언급된다. 주요 원자재의 유럽 역내 공급망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 배터리 재활용 내용이 법안에 담길 것으로 예상돼서다. 일부 종목은 이미 심상치 않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폐배터리株, 연초 반등…"CRMA 기대감"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폐배터리 3인방(성일하이텍·새빗켐·코스모화학)의 연초 대비 평균 수익률은 19.42%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10.91%)와 코스닥 지수(12.88%)를 모두 웃돌았다. 대장주인 성일하이텍은 종가 기준 올해 들어 14.65% 올랐다. 세빗캠은 29.75%, 3인방 중 유일하게 유가증권시장에 속한 코스모화학은 13.87% 상승했다.
폐배터리주는 작년 하반기 초반까지만 해도 IRA 기대감에 상승세를 거듭했다. 하지만 랠리는 반짝에 그쳤다. 하락장이 심화한 데다 단기 급등한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연말(12월 29일 주가 기준 7만6300원) 새빗켐은 고점(18만4800원) 대비 주가가 반토막 났다. 성일하이텍, 코스모화학도 마찬가지다. 작년 12월 말 주가는 고점 대비 각각 40%, 33% 떨어졌다.
이랬던 폐배터리 관련주가 올해 들어 반등한 건 1분기 CRMA 초안 발표를 앞두고 기대감이 유입되면서다. CRMA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각된 공급망 불안에 대응해 유럽연합(EU)이 내놓은 유럽판 IRA다. 아직 법안은 추진 중에 있으며, 올 1분기 중 초안이 공개된다. 내용의 핵심은 미국 IRA와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역내에서 조달(채굴·재활용)된 원자재가 적용된 제품에 한해 보조금 혜택을 주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원자재는 리튬, 코발트, 희토류 등 총 30가지다.
하지만 유럽 역내 광물 채굴이 제한적인 만큼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한 광물 자체 조달 방안이 부상할 것이란 분석이다. 작년 4분기 EU 회원국을 대상으로 법안 관련 의견을 수렴한 결과, 재활용으로 핵심 원자재의 대외 의존도를 줄이자는 내용이 언급됐다. 증권가가 폐배터리 업종을 CRMA 수혜주로 꼽은 이유다.
허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때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재활용)을 통해 추출한 원자재가 일정 비율 이상 포함되도록 의무화하는 조치가 시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성일하이텍, 최대 수혜주"
증권가는 최대 수혜주로 '성일하이텍'을 꼽았다. 유럽 내 공장을 이미 갖춘 성일하이텍이 국내 기업 중 CRMA에 적극 대응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성일하이텍은 헝가리에 제 1·2 '리사이클링파크'를 보유하고 있다. 제 2공장은 유럽 내에서 최대 규모로 갖췄다. 지난해 8월엔 폴란드에 리사이클링파크를 준공했다.
리사이클링파크에선 수명이 다한 2차전지를 수집해 전처리하는 공정이 진행된다. 소재 추출 작업이 이뤄지는 후처리 공장인 '하이드로센터'는 현재 국내에만 2곳이 있다. 이르면 올해 한 곳이 군산에 추가된다.
성일하이텍은 인도 미국 유럽 등으로 글로벌 거점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9곳이던 리사이클링파크를 2025년 16곳, 2030년 30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하이드로센터도 2030년까지 미국, 유럽 등 5곳으로 확대하겠단 계획이다. 유럽 내에선 독일과 스페인에 추가로 전처리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독일은 2024년, 스페인은 2025년 준공이 목표다.
시장규모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20년 4000억원에서 2025년 3조원으로 연평균 47% 확대될 것으로 전망됐다. 2030년에는 12조원, 2040년에는 87조원, 2050년에는 600조원 규모로 가파른 성장이 예상됐다.
김성환 부국증권 연구원은 "리사이클링 글로벌 경쟁업체는 성일하이텍을 포함해 5개 업체에 불과하다"며 "중국의 경우 로컬 대응에 국한된 상황인 만큼 벨기에 업체인 유미코어(Umicore)와 성일하이텍이 유일한 대안으로 압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럽 중심의 현지 거점 구축을 통한 초기 선점 효과로 경쟁 우위가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처리 공장만 유럽 내에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2030년을 목표로 유럽 내 하이드로센터를 증설하겠다는 계획이지만 7년이나 남았다. 회사 측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CRMA 가이드라인이 구체화되는 대로 유럽 내 하이드로센터 설립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