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인공지능(AI) ‘챗GPT’가 일으킨 돌풍이 디지털헬스케어 업계에도 불고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한 바이오기업 주가를 추종하는 KODEX바이오 ETF가 연초(1월 2일) 대비 4.5% 상승하는 동안 AI를 활용해 암을 진단하는 기업 루닛의 주가는 같은 기간 37% 상승했다.
2일 IMM인베스트먼트가 주최한 ‘IMM 헬스케어 데이’ 행사에서 서범석 루닛 대표(사진)는 “새롭게 출시하는 ‘루닛 스코프’를 중심으로 올해에도 지난해처럼 가파른 매출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사업 실적 나오는 루닛, 사운더블헬스이날 행사에서 첫 주자로 나선 루닛은 IMM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 기업으로,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바이오에 대한 전반적인 경기침체 및 투자위축으로 한 때 주가가 공모가 보다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AI’라는 테마를 타고 지난달부터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주가가 그냥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를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서 대표의 설명이다. 암 진단 솔루션인 ‘루닛 인사이트’가 우선 전 세계 1300여 병원에 설치되며 본격적인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공개된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은 100억원이다. 서 대표는 “루닛 인사이트를 도입하는 병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신감의 근거는 지난 1일 가던트헬스를 통해 출시한 ‘루닛 스코프’다. 면역관문억제제를 사용하는 데 기준이 되는 암세포 표면의 PD-L1 단백질 발현량을 기존 대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루닛 스코프로 분석한 결과, 기존 검사기술 대비 PD-L1 검출률이 20% 증가했다. 이전 검사 방법으로는 면역관문억제제 투여 대상이 되지 못했던 환자들이 투약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서 대표는 “제약업계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에서 루닛 스코프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대표에 이어 다음 주자로는 송지영 사운더블헬스 대표가 나섰다. 공학박사이면서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라는 이색적인 이력을 가진 송지영 대표가 설립한 디지털헬스케어 업체다.
소변을 볼 때 들리는 소리를 스마트폰으로 수집해 배뇨증상을 모니터링하는 ‘프라우드P’라는 앱(응용프로그램)을 미국에 출시해 지난해부터 매출이 나오기 시작했다. 프라우드P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2등급 의료기기로 등록되기도 했다.
송 대표는 “별도 장비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프라우드P의 100만 달러 매출 달성 및 급여 등재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라우드P에 이어 스마트폰으로 기침, 코골이 등을 모니터링하는 앱 ‘커우피(Coughy)’의 미국 임상도 준비 중에 있다. 올해 3분기 중 400만 달러 브릿지 펀딩을 유치하는 데 이어, 2025년엔 1000만 달러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병원과 환자를 위한 디지털 솔루션, 휴톰·딥매트릭스·루닛케어휴톰과 딥매트릭스는 병원 의료진을 돕는 디지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휴톰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최다 로봇 위암 수술을 집도한 기록을 가진 형우진 연세암병원 위암센터장이 설립했다. 휴톰은 형 대표의 경험을 토대로 복강경을 통한 위암 절제 수술시 어떻게 수술을 진행해야 할지를 3차원으로 보여주는 ‘수술 내비게이션’을 개발했다.
형 대표는 “임상을 통해 국내외 의사들이 벌써 휴톰의 제품을 경험했고,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사업화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위암에 이은 신장암, 폐암 순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계획도 공개했다.
딥매트릭스는 AI 전문가인 송현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설립한 AI 헬스케어 기업이다. 의료진이 직접 관리하는 중환자실 환자들의 인공호흡기를 환자 상태에 맞춰 대신 조절해주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송 대표는 “1만7000건의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데이터를 받아 인공호흡기 AI를 개발 중”이라며 “흡기 데이터는 빅데이터를 통해 AI가 학습을 마쳤고, 이젠 배기 데이터를 학습할 차례”라고 말했다.
지난달 루닛에서 분사한 루닛케어는 암환자를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다. 루닛이 암 검진과 치료 관련한 솔루션을 제안한다면, 루닛 케어는 치료 외 환자의 전반을 맡는다.
박은수 루닛케어 대표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많은 암 환자들이 불필요한 건강보조식품을 사는 데 돈을 지출하기도 하고, 질병에 대한 그릇된 오해를 하기도 한다”며 “암환자와 보호자의 '웰니스(wellness)'를 위한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이라고 자사 서비스를 소개했다.
질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실제 암이란 병마와 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환자 커뮤니티와 함께 각종 제품 등을 제공하는 B2C 플랫폼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베타서비스를 시작해 10월 5대암으로 확장한 뒤, 2개월 뒤인 12월 엔 회원수 1만명을 돌파했다. 아시아 최초 DTA 이사 웰트, 디지털 육아 솔루션 루먼랩, 정신건강 챙기는 눔웰트는 미국에서 첫 처방형디지털치료제(DTX)를 출시한 페어테라퓨틱스 등이 주도하는 글로벌 디지털 치료제연합인 디지털테라퓨틱스얼라이언스(DTA)에 아시아 기업 중 처음으로 이사사로 선임됐다. 웰트는 올해 내로 불면증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제(필로우RX)를 국내에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식약처로부터 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이 이르면 1분기 중 종료된다.
강성지 웰트 대표를 대신해 연사로 나선 노혜강 웰트 이사는 “비급여 방식을 통한 의료현장 공급뿐 아니라 국내 디지털 치료제 중 처음으로 보험 등재라는 목표도 노려보겠다”고 밝혔다. 이어 “스마트벨트에 든 가속도 센서 등을 이용해 착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대사증후군과 근감소증에 대한 디지털 바이오마커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루먼랩은 스마트폰으로 부모가 촬영한 영상으로 아이의 발달 정도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날 발표를 받은 정소현 루먼랩 이사는 “아이 부모라면 누구나 맘카페 같은 곳에서 불확실한 정보를 보고 ‘우리 아이 발달이 더딘건 아닌지’ 염려를 해봤을 것”이라며 “정확한 영상 모니터링을 통해 아이들의 발달 정도를 진단하는 검진 서비스를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어린이 발달장애 검진을 시작으로, 조기진단 솔루션까지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식생활 및 행동 개선으로 체중감량을 돕는 헬스케어 브랜드 눔 또한 IMM인베스트먼트가 구주를 매입하면서 포트폴리오 기업으로 합류했다. 글로벌 회원수는 약 5000만명이며 미국 내 1위 체중감량 서비스 업체다. 이날 미국에 있는 정세주 눔 대표를 대신해 현장 발표를 맡은 김혜진 상무는 "당뇨 및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서비스 중인데 이어 "2021년엔 '눔 마인드'라는 정신건강 관리 프로그램까지 출시해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고 말했다.
눔은 2021년 6300만 달러 매출을 올렸으며, 지난해에 흑자전환했다. 김 상무는 "흑자전환에 힘입어 당장 올해는 아니더라도 기업공개(IPO)를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휴레이·메디블록·터울·메디르약국, 병원 등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구축하는 휴레이포지티브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상장준비에 나서 내년 기업공개(IPO)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두아 휴레이포지티브 대표는 “이자리에 NH투자증권 관계자가 오신 것으로 안다”며 “곧 IPO 대표주관사 계약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휴레이포지티브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톱티어 정보기술(IT) 기업 출신들이 나와 만든 디지털 헬스케어업체다.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디지털화에 뒤쳐진 병원 등을 타깃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최 대표는 “비교적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빠르다는 국내 병원도 전자의무기록(EMR)이 30%밖에 구축이 안 됐다”며 “국내 시장에 이어 우리보다 훨씬 더딘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으로 유명세를 탔던 메디블록은 EMR을 구축하는 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연사로 나선 고우균 메디블록 대표는 “100% 웹으로 돌아가는 EMR 기록 및 열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웹100%라는 의미는 윈도우즈, 맥OS, 리눅스 등 병원이 어떤 운영체제를 쓰든 관계가 없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모바일로도 손쉬운 접근이 가능하다”고도 덧붙였다.
터울은 약국에서 조제한 약 봉투에 인쇄되는 복약안내 내용을 서비스하는 업체다. 신승호 터울 대표는 “병원 약 입고 데이터에 얼마만큼 약이 조제돼 나갔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더하면 약국의 재고관리가 가능하다”며 “실제로 약이 어떻게 처방되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빅데이터 구축에도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 주자였던 메디르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메듭’의 운영사다. 메듭은 비대면 진료 플랫폼 중 후발주지로 손꼽힌다. 후발주자이지만 수도권 서비스 구축을 마치고 지방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손덕수 메디르 대표는 “지역 기반으로 환자와 가까운 병원을 매칭해주는 정책으로 타서비스와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되면 특정 병원이나 상급병원으로만 진료가 몰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사회자로 나선 문여정 IMM인베스트먼트 상무는 “진단부터 치료, 관리에 이르는 헬스케어의 전 영역에 걸쳐 하나의 싸이클을 만드는 투자를 했다”면서도 “보수적인 의료 현장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앞당겨 그 혜택이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